타지살이

이민와서 보수 주의자 하신다고요?

Rambling on & about 2020. 11. 26. 08:02

이전에 페이스북을 할 시절 실존 지인 중에 남편 자랑은 진짜 하고 싶어서 안달 났는데 그 와중에 빻은 사상에 자부심까지 지닌 동갑내기 어떤 여자애가 하나 있었다. 그 거대한 자기애가 걸리적거려 결국 SNS상에서 다 지웠다. 

 

우파건 좌파건 간에 사상이 자신의 대표하는 부심 거리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사상이 정말 학구적인, 사회의 문제를 중시하는 열정에서 나왔는지도 알 수 없을뿐더러 기득권, 마치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엘리트층에 소속되어있다는 단서인 거 마냥 그렇게 편 가르기 하고 다니는 그런 천지 분간 못하는 멍청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암튼 이 여자애 같은 경우엔 한국인이 이민 1.5세대로 전문직 직함 달고 결혼해서 안정된 삶 사니까 자기가 호주 주류 보수사회에 편입되었다고 크게 착각을 하는 거 같더라. 삶에 있어서 사회에 완벽하게 융화가 된다는 거 자체도 낭설인 데다가 마치 자신이 소년 급제라도 한 것처럼, 세상의 꼭대기를 이미 다 도달한 것처럼 지내다간 말년에 깡통 차게 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가 없다. 뭐 이 여자애가 호주 내의 기득권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을지 안 받을지는 밑에서 썰을 풀어보기로 한다.  

 

유럽 문물에 기반을 둔 호주 같은 사회에선 보수라는 개념이 인종에 크게 기반을 두고 있다. 아직까지도 앵글로 색슨 인종이 제일 큰 섹터를 차지하고 있고 옛 중세시대 때 어느 어느 집안에 종속되어 있단 걸로 생계가 보장되는 그런 시대는 아니지만 한나 아렌트 말대로 현대 사회에서 보수란 집단에 속해있음은 어느 집안, 대규모 가족 공동체에 속해있는 안정감을 주게 된다. 

 

기득권 타이틀에 목메다는 분들께서는 백인스러운 외모가 중요하고 대대로 어떤 가치관을 주입받고 살았는지가 엄청나게 중요한가 보다. DNA 검사하면 조상들이 전역에 다 널려있어 이런 관념을 지닌 거 자체도 우스꽝스럽지만 뭉뚱그려 자신의 조상이 전반적으로 유럽 태생이며 대대로 크리스천 가치관을 주입받고 살았다는 건 보수 주류 사회로 들어가는데 황금 티켓이라고 착각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애석하게도 이런 문화권에선 자신의 삶의 목표 자체가 보수사회 진입이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자신의 환경과 외모가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정말 변변치 않은 일용직에 술에 쩔어 도박에 쩔어 폐인 같은 인생을 살아 주위의 손가락질을 받아도 네오나치에 가입하고선 나는 호주에 전통이 이민자들로부터 파괴되는걸 원치 않다며 지껄이고 다닐 수 있게 되는 거고. 적어도 내가 보는 호주 상의 극단적 민족주의는 이런 형태를 띠고 있는 거 같다. 

 

이민자들은 자신들이 그 나라를 떠났을 때 모국에서 같은 민족들과 어우러져 살아간다는 그 동질감, 가족 공동체에서 살아간다는 안정감을 포기하고 타지로 떠난다. 그 모국이라고 다를리는 없을 거고 거기에도 극한 민족주의, 우성학 같은 문제들이 만연해있지 않겠나. 타지에서 새 삶을 개척하기 위해 본인 스스로 모국에 내재된 보수적인 굴레에서 빠져나온 거와 마찬가지다. 

 

그래 놓고서 바다 건너 타향살이하면서 국수주의를 통해 문화와 언어가 전혀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지려 한다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게 어디 있겠나? 호주애들이 한국 보수들의 빨갱이 타도란 문구를 어찌 가슴으로 이해를 하겠으며 말 안 들으면 그냥 독재로 다스리고 탱크로 밀어버리자는 백발성성 태극기 부대의 속마음을 어떻게 헤아리겠나? 여기 보수가 저기 보수랑 편먹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모국 떠나서 타향 살이 하는 순간부터 당신은 소수민족인 거다. 본인의 위치를 좀 알아먹으란 말이다.  

 

이래서 내가 한국에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이 기준으로 호주 사회에 융화되려 하면 절대 성공할 수 없지. 사회에서 타인들과 접점을 찾는 기준 자체를 바꿔야 함. 근데 그 빻은 애는 그걸 모르는 거 같더라. 뭔들 분간은 잘하겠냐만은.

 

애초에 자기한테 주입된 한국적 전통적인 가치관이 현 호주 보수층의 전통적인 가치관이랑 비슷할 수 있겠냐고. 지가 알고 있는 전통은 자기를 비롯한 소수의 이방인들만 가지고 있는 가치이고, 이 가치는 이민을 오는 순간부터 백인 중심 호주 문화에 이질적인 오염물로 받아들여지는 데다가 결국 다수의 의해 묵살당한다. 조상대에서부터 내려온 전통의 기준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데 보수 주의하려면 자기 뿌리를 찾아 모국으로 돌아가야지. 

 

한국적 민족주의 우산 아래서 발현할 수 있는 게 한인들의 보수주의 가치관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