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랫동안 이민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민생활의 녹록지 않음, 인종차별, 새로운 환경에 적응과정에 그렇게 세세하게 적지 않는 본질적인 이유는 나는 이민자로서의 이방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이방인이란 느낌을 내가 말을 떼기 시작했을 때부터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순탄한 유년시절을 겪고 그에 인한 높은 자존감으로 원만한 교우 생활 (크게 왕따를 당한건 아니지만 절친한 친구들을 사귀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음)까지 했더라면 한 순간에 호주땅에 떨어져서 말을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인종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거 자체가 아주 크나큰 쇼크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내 블로그의 글은 나의 호주 적응기로 도배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것 자체에 엄청난 프라이드를 가졌을지도 모르고 "OO의 호주 생활기" 뭐 이딴 타이틀 붙이고 교외 맛집 사진, 이직 꿀팁, 시드니에서 생존하는 법 뭐 이런 주관적인 글들로만 점철된, 가이드도 아니면서 가이드 인척 하는 그런 블로그를 네이버 어디에선가 끄적이고 있었겠지. 학교 커리큘럼도 다른데 20년 전 영어 공부법 공유하는 게 뭔 소용이 있으며 3개월마다 변하는 이민법인데 전문가도 아닌 내가 십수 년 전 비자 신청 과정 팁을 공유하겠나. 맛집도 결국 주관적인 거라 그런 거 별점 매기기도 싫고.
내 13살 어릴적 관점에선 당연히 언어를 못하고 한국에서 공들여서 사귄 친구들을 잃은 박탈감이 당연히 안 컸던 건 아니다. 그것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게 원치 않게 달린 혹 취급을 받다가 온 가족이 이모에게 더부살이 하는 신세가 되었던 터라 가족 내에서 부터 나 자신이 배척을 당하는 인상을 더더욱 강렬하게 받았다. 가족이란 소규모 단위의 사회에서부터 어린 나이에 눈칫밥을 먹으니 외국에서 검은 머리 아시안으로 받은 눈초리 따위는 그렇게까지 위협적이게 느껴지지 않은 것뿐.
내가 운이 좋아서 대놓고 인종차별적인 욕을 듣거나 폭행에 휘말리지 않은것도 있지만 외국인으로서의 이방인이란 아이덴티티는 집에서 온종일 싸한 눈초리 피하느라 분주했던 나에게 그렇게 절망적이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쭈구리였는데 여기 와서 달라질 게 있겠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신경을 끄고 살았다는 것이 맞다.
그냥 자주 보는 워홀 경험담이나 이런걸 보면 이민자들은 자신이 인종차별에 노출되어 있다는 큰 인상에 계속 신경을 쓰다 보니 상대방이 그냥 원래부터 강약약강에 싹수없게 대하는 것에 대해서도 결과적으론 내 피부색 때문이었다 이렇게 결과를 도출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다. 당연한 것이 한국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당당하게 살아온 성인들이 다른 나라에 와서 당하는 부조리에 대해서 신경이 안 곤두설 리가 있겠나. 포괄적인 선상에서 피부색이 약자가 가질법한 한 가지의 요소일 순 있지만 이런 일반 인성 쓰레기들이 약자를 판별하는 요소는 그 사람의 체격, 말투, 의상 등등 가지각색 인 데다가 병신 머릿속은 제대로 파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꼬여있기도 하다.
인종차별자들은 생각보다 많기도 하고 생각보다 적기도 하다. 위에서 말한대로 딱히 인종차별이라기보단 그냥 사람 자체가 이상하게 꼬인 꼰머이거나 파탄자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진짜 대놓고 면전에서 인종차별적 욕지거리로 시작하는 애들도 있고. 병신들은 다양하다. 생각에 나름에 따라 그냥 ㅄ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거고 괜히 인종 관련 트라우마 트리거 돼서 참 교육시킨다느니 뭐 이렇게 유튜브 30분짜리 썰 거리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거고. 그건 그냥 개개인이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써 세상에서 박탈되고 분리된 느낌은 이민자로서의 설움보다는 그 역사가 훨씬 길고 강렬하고 주로 실존주의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주제이다. 그 어느 누구와 소통을 해도 항상 겉도는 느낌에 어떠한 환경에서도 온전한 안정을 찾지 못한다는 느낌은 어떠한 문화나 민족적 소속감 그 어느 것도 해답을 줄 수 없다.
'타지살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사로 확인한 인간의 이면 (0) | 2020.11.27 |
---|---|
이민와서 보수 주의자 하신다고요? (0) | 2020.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