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SD 회복

부부싸움이 아이에게 남긴 상처 - 나르시시스트의 싸움이란

Rambling on & about 2021. 3. 19. 19:12

이 부부싸움이란 토픽은 내가 겪은 트라우마 중 제법 큰 파이를 차지하고 지금 겪고 있는 이인 증상에 직결되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원래 장황하게 글을 많이 쓰는 편이기도 하지만 넘겨짚고 가야 하는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윗 포스트에서 이어가려고 한다.

 

미성숙한 사람들이 자주 하는 변명 - 가난

 

앞서 말한 데로 내 부모들은 정신적으로 미성숙했고 이 때문에서인지 장기간 사람들과 협심을 요하는 것들을 해본 적이 없다. 한마디로 말해 사회의 일원으로 세상에 뭔가를 기여해보면서 살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어느 직장에서 근속을 한다거나 공동체 생활에 길게 참여하는 게 인격적 결함 때문에 불가능했다. 그래서 정처 없이 떠도는 이방인 삶을 살았고, 친인척과의 관계도 파탄이 자주 났으며, 어차피 평생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사회에 유령처럼 떠돌았기에 지금 당장 한 줌에 재가 되어 사라져도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것이다. 

 

나는 이런이들이 자신이 이것밖에 되지 않은 이유로 가난으로 탓하는 것을 한심하면서 또 절망적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인격적 결함은 자신들의 부모의 방치나 학대 탓이지 그렇게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콩 한쪽밖에 못 먹여도 아이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 매끼를 캐비어를 먹여도 자신의 손을 쓰는 게 귀찮아서 보모에게 24시간 맡기는 부자가 있다. 이게 또 절망적인 이유는 '나는 돈 없어서 불행했다'라는 내러티브는 이들이 다른 가족 일원에게 죄책감과 연민을 심어주면서 기생할 수 있는 좋은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이 싸우는것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다

 

앞서서 나온 내 부모가 싸우는 패턴을 보면 어린 나는 아빠의 광기 서린 표정과 말을 보며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였고 엄마가 본인을 도와 달라고 요구하는데서 오는 '막중한 책임감'과 말도 안 되는 덤터기를 쓴 거 같은 '억울함', 이 상황을 작은 체구로 어찌할 수 없는데서 오는 '절망감'과 '무력감'을 이 싸움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는데도 다 오롯이 맞았다. 

 

일단 발단은 항상 나르시시스트 엄마의 과대망상 또는 관계 내에서 주도권을 확인시켜 아빠를 복종시키려는 의도로 시작된다. 아빠가 놈팽이었다는 게 정말 싫고 본인의 재정에 큰 문제가 되었다면 애초에 떠났을 거다. 이미 자신에게 손찌검을 한 남자를 결혼 직전까지 가서 파투를 낸 걸 보면, 아빠는 자신에게 정말 위협적인 존재가 아님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에 결혼 생활을 몇십 년을 유지한 거다. 부부싸움 역시 싸울 만해서 싸웠다는 결론이 나온다. 

 

내가 파악할 수 있는 한에서 왜 엄마가 이렇게 싸움을 굳이 시작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나열해본다.

 

이미 아이까지 낳아 가족이 있으니 이혼녀 눈도장은 싫고 [외부에 체면 차리기],

본인의 내재된 자기혐오가 아주 심했기에 (가방 끈 짧고, 배경 안 좋고, 기술도 없음) 남을 기를 죽여서 본인 가치에 대한 상대적 충족감을 얻어 내는 데다가 [상대방 비난/평가절하, devaluation]

결론적으로 내 벌이만으로는 모자라는걸 너무 잘 아니까 남편인 너는 닥치고 돈이나 더 가져와라 라는 메시지 전달을 강하게 할 수 있는 거다. [상대방 비난/평가절하, devaluation]  

 

나르시시스트에게 idealisation (이상화)과 devaluation (평가절하)는 배우자나 자녀를 조종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비행기를 태워주다가 갑자기 하루아침에 돌변해서 비난을 퍼붓는 행태는 나르시시스트와 살게 된다면 무한으로 지속되는 사이클이다. 엄마 본인이 말하길, 내 아빠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이라면서 어린애 구슬리듯 칭찬해주면 (idealisation) 또 까먹고 자신의 말을 잘 듣는다라는 얘기를 자주 했다. 나르시시스트 본인이 인지를 못하는 게 하나 있다면 이들은 사람을 조종하기 위해서 칭찬을 하다가도 꼭 적당한 때를 봐서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방식( devaluation)으로 끝맺음을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상대방이 큰 절망감과 혼돈을 겪게 되고 그 나락으로 떨어진 시점을 이용해서 자신에게 심적으로 의탁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이 사이클을 통해 여러 번 심적으로 의탁을 하게 되면 나르시시스트가 그 상대방에게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다 들어주는 그런 환경이 조성된다.

 

엄마가 부부싸움을 시작하는 것도 평가절하의 의도에서 시작되었고 남편을 까내리고 싶은 건 그냥 본능적으로 나오는 것이다. '요새 좀 풀어 줬더니 영 안 되겠네.' 라며 군, 학교 내에서 기강을 잡는다면서 집합을 시키는것이 그런 맥락이다. 그래서 무수히 부부싸움이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이 되었고 그 싸움 이후에는 엄마는 아빠를 또 말로 구슬려서 비행기를 태우고 그 덕에 또 아빠는 아는 형 소개로 일을 찾아 몇 주에서 몇달을 일 하는 그런 패턴이 반복이 되었다. 

 

연애 상담글에서 나오는 밀당이라는 것이 큰 틀을 보면 idealisation/devaluation 사이클에 해당한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이걸 딱히 이론적으로 인지하고 계산을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들숨날숨 쉬듯한다. 장기적으로 이렇게 상대방을 붙잡아 두면 그 상대방에게 기생을 하거나, 인간적인 자유를 차단하고, 거짓말과 과장을 매번 하며, 인간관계마저 고립시키고 결론적으로 한 사람의 영혼을 말살시키게 된다. 

 

그들이 말하는 오늘 한번 너 죽고 나죽자라는 식의 싸움은 전혀 죽음과는 관련이 없다. 하나는 일부러 속을 긁어서 상대방을 하찮고 별 볼 일 없는 존재로 만들어 굴복시키려 하고 하나는 자존심 하나 남은 거 지켜보겠다고 없는 말 만들어내면서 버틴 거나 다름없는 거다.

 

만약 자녀로서 이와 같은 싸움을 목격을 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매번 경험했다면 부모들에게 싸움은 그냥 생활의 일부였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짊어지는 자녀로선 참으로 허탈하긴 하겠지만, 그들한테는 남자애들이 치기 어린 생각에 한번 주먹다짐해보듯 하는 그런 대련이나 스포츠나 다름없다. 실제로도 이런 나르시시스트들은 이런 싸움이 자신의 무료한 연인관계에 적절한 '텐션'을 주기 때문에 끈끈하게 사이를 유지하는 비결인 거 같다는 멍청한 이야기들을 해댄다. 수년 전 정말 흐릿하게나마 깨달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이들은 내가 태어나지 않았어도 똑같이 그렇게 추접스럽게 지지고 볶고 살았겠구나' 였는데 몇 년간의 자각이 계속 쌓이면 쌓일수록 그 생각은 강화가 된다. 

 

부부싸움에서 아이가 적극적으로 도구로써 이용되는 예

 

시절 엄마는 나를 항상 방패막으로 사용했다. 본인 힘으로 남편을 제압을 수 없는 걸 알기에 힘없는 핏줄인 나를 항상 싸움의 현장에 집어넣어서 아빠로 하여금 모습을 보면서 분을 삭이고 죄책감을 느끼게끔 도구며 장치로 사용했다. 그랬기에 모든 부부싸움의 현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을 했고 사용 방치된 어린 나의 공포를 달래 사람은 주변에 어느 누구도 없었다

 

역전 너구리 굴같이 담배연기 자욱한 복덕방에서 노름을 하고 있던 아빠를 급습할 때도 다닥다닥 붙어있던 복덕방 문을 하나씩 차례로 열던 사람은 유치원 나이 남짓의 나였고, 엄마는 그냥 먼발치에서 뒷짐 지고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다. 시절 기억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 또렷하지가 않다. 그냥 내가 내린 가설로는 그때 당시 나는 극한의 긴장상태로 이미 해리(Dissociation) 왔고 뇌가 당시의 이미지를 아예 제대로 입력을 안 했던 거 같다.

 

이제 걸음마를 나를 등에 업고 카바레에 찾아가 아빠를 붙잡고 대면했던 것도 위와 같은 맥락이다. 이런 건 구전으로 내려오는 탓에 아예 기억을 못 한다. 엄마는 이런 걸 자신이 남편을 휘어잡았던 사건들이라며 자랑이며 자신의 기구한 팔자 포장한답시고 늘어놓는 덕에 비교적으로 내가 회복과정에서 관계 파악을 하는데 어느 정도 유용하게 쓰고 있다. 

 

부부싸움을 다 보고 있는 아이에게 있어 부부 둘 다 가해자이다. 이런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이 된탓에 그 시절의 이인증은 평생을 따라다니면서 괴롭혔다. 내가 최대한 단어로 표현을 하려고 한 것이 이 정도이지만 보통의 환자들은 이걸 말로 설명할 수 없어서 꽤나 난처해한다는 글들을 많이 봐왔다. 이런 걸 조현병의 환청과 환각으로 착각해서 십수 년을 잘못된 병명으로 알고 사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