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SD 회복

C-PTSD - 가해자인 부모에게서의 안전확보

Rambling on & about 2021. 2. 22. 12:39

과거의 트라우마에 대한 작업은 진행 중인데도 새 엔트리를 작성하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몇 주 전 정서적 재양육을 시작했는데 부모와 모든 재정적인 관계까지 다 청산을 하고 나고 1년이 지나서야 가능해졌다. 그만큼 내 정신이나 육체적인 면에서 트라우마 작업의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까지 일정기간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한다.

주디스 허먼의 설명에 의하면 가정환경에서의 C-PTSD는 부모인 가해자가 자녀를 상대로 '독재자'로 군림하는 상황이다. 이런 강압적이고 폐쇄된 환경에 장기간 노출되어서 정서적인 감정 해소가 거의 불가능하고, 어린 나이 때부터 성격의 틀 자체가 변형되고 각종 신체적 증상 등등이 동반된다.

Complex PTSD라는 새로운 병명을 창시한 주디스 허먼이 [트라우마] (영:Trauma and Recovery)라는 책에서 제시한 C-PTSD의 치유 과정은

  1. (가해자로써의) 안전 확보
  2. 과거에 대한 애도와 감정의 해소
  3. 새로운 환경 내의 공동체와 연결이다

이 과정은 다른 나라로 이민 가는 것과 같은 임팩트라 한다. 그래서 치유와 재활 과정에서 수년,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가족으로 인해 C-PTSD를 겪는 경우 안전 확보라는 단계가 제대로 완성되려면 다음과 같은 요건이 다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으로부터의 경제적인 자립
-나를 진정한 가족의 시선으로 받아 줄 수 있는 정서적 서포터 (애인, 배우자가 제일 적합)
-물리적으로 가족 차단
-가족과 연관된 모든 연결 고리를 끊는 것 (돈, 법적 부양 관련, SNS 계정, 전화번호, 그 주변 사람들)
-적절한 텀을 두고 상담을 받는 환경

-가족으로부터의 경제적인 자립

Cptsd 환자들은 주로 부모에게서 가해를 당한다. 피해자인 본인이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정서적으로 의지를 하면서 동시에 부모에게 물주 역할을 하게 되기도 한다. 부모가 자신을 부양을 하던, 자신이 부모를 부양을 하든 간에 이렇게 돈으로 묶여 있는 관계는 애초에 정서적으로 자웅동체 같이 건강하지 않은 관계를 형성한 데서 시작된다. 내가 없으면 그들은 죽고, 그들이 없으면 나는 죽는 이런 상황은 절대로 건강한 관계라고 할 수 없다. 어떠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을 경우 이런 관계는 둘 중 누군가의 죽음으로 끝난다. 효에 대한 집착이 유독 심한 한국 같은 나라에선 부모의 죽음으로 인해 늦은 나이에 해방을 맞이 하는 자녀들 얘기가 압도적으로 많이 보인다.

피해자들은 흔히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에 가해자인 부모들에 대한 원망을 좀 더 구체화 하기 시작한다. 독립에 대한 생각이 커지고, 자신을 조종하려는 부모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탈을 꾀한다. 이 나이에 경제적 자립을 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부모의 간섭 아래 저축을 하더라도 그 돈은 본인의 돈이 될 수 없고 (체크카드나 계좌 비번을 부모가 볼모로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나이 때에 제일 위험하지만 확실한 방법은 가출을 해서 나오는 경우인데 이는 극소수이다. 만약 이 시기 cptsd로 인한 무기력, 절망감으로 인한 사회생활 회피 또는 그리고 신체 증상을 동반한 공황 발작이 온다면 피해자가 독립하고자 하는 욕망은 더더욱 감소한다.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마당에 집을 나오겠다는 생각은 사치이기 때문이다.

만약 부모의 도움을 받아서 자취를 할 수는 없느냐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존이 부모의 돈으로 충당이 되는 것만큼 그들이 나를 마음껏 조종하고 정서적으로 착취당할 만한 여지를 주는 것도 없다. 부모가 돈을 끊어 버리면 도로 집으로 들어가는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는 내 신체적이나 정서적 여건으로 홀로서기를 한다는 건 무리라고 봤고 일단 버텨보자는 식으로 자립심을 키우려고 했다. 가정의 분위기는 전혀 바뀌지 않았고 어서 자립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나 자신을 끝까지 몰아세웠다. 수번의 자살시도와 입원 생활을 했고 수년간 약기운에 취해 산송장 같이 버틴 결과 돈을 벌 수 있는 학위를 얻었다. 그 덕에 20대 전체가 다 어둠 속에 묻혔다고 봐야겠지만 이는 30대가 되어 나에게 경제적 여유를 주었다. 사람마다 견딜 수 있는 양이 다 다르고 가정이 주는 그 공포의 스케일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시기가 좋다고 이야기는 할 수 없다. 결과적으론 경제적 자립은 그 때야 언제가 되었든 간에 본인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다는 수치상 척도를 제시하기 때문에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진정한 가족의 시선으로 받아 줄 수 있는 정서적 서포터 (애인, 배우자가 제일 적합)

위에서 말한 어린 나이에 가출이 위험한 이유는 평생 부모의 강압적인 태도에 익숙해졌고 그리고 본인으로 인해 불행이 자초되었다 생각하는 죄의식, 무기력과 비관적인 상태 이 모든 것들이 개인이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현실 자각이란 상황과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 때 가능한데 가해자인 부모조차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타인은 어떻게 보겠는가.

사람에 따라서 많이 갈리는 부분이 바로 ‘타인을 어떻게 가려내는가’이다. 어떤 이들은 사람을 쉽게 믿고 그들을 내 불행을 끝내 줄 '구원자'로 쉽게 연결 짓는 부류가 있고 아예 사람에 대한 믿음 자체를 저버리고 그들과의 소통을 차단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후자에 가까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생각이 위와 같이 흑과 백으로 구분 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 또한 어쩌다가 가까워지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현실보다 더 높은 기대치와 환상을 (이상화, idealisation) 가지고 접근하다가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인간적 실수를 보이면 크게 실망하고 돌아서는 그런 식의 인간관계 패턴을 반복했다.

내가 사귀는 사람마다 내 인생을 '구원' 해줄 꺼란 환상을 가지고 소위 '콩깍지'가 심하게 씐 채 만나게 된다면 그가 가진 결점은 물론 그가 부모와 같이 정서적 착취와 학대를 행한다 할지라도 다 보이지 않게 된다. 되리어 그가 나에게 하는 학대나 폭력은 이렇게 특별한 관계가 그 큰 결실을 맺기 위해 내가 이겨내야 하는 고통으로 치부하고 견뎌낸다. ‘쉽게 불붙는 사랑’, ‘너와 나는 하늘에 계시에 의해 정해진 운명적인 사랑’, 주위 사람이 우리 둘을 말리는 건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이 당해야 했던 크나큰 시련이라고 생각하는 것 등등. 이렇게 물증은 없고 상징만 가득한 판타지속 사랑이 이상화이고 데이트 폭력의 합리화 이기도 하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 부모 밑에서 크면 상대방에 대한 이상화, 우상화를 매일 접하게 된다. 애정관계에 대한 어떠한 현명한 조언을 해줄 수 없는 부모 밑에서 자녀들은 부모가 하는 걸 그대로 답습할 수밖에. 흔히 부모복 없는 x이 남편복 자식복도 없다는 넋두리를 하는데 정말 연애 모르는 생짜 초기에 피해자들은 자신의 부모랑 똑같은 사람에게 끌리게 된다. 부모가 그랬듯 자녀를 똑같이 대한다. 치료를 통한 개입이 없으면 학대의 되물림은 이런 수순으로 전개가 되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누구를 만나더라도 쌍방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이며, 어떤 걸 해 줄 수 있고, 얼마만큼 서로의 속내를 보여주며 서로를 의지 할 수 있는지 중장기간으로 봤을 때 확립이 불가능하다면 그런 사람에겐 어떤 깊은 관계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부모로 인해 C-PTSD를 겪는 이들에겐 진정으로 의지할 부모의 존재 자체가 없다. 그들은 양육된 것이 아니라 그저 조건적 숙식을 제공받은 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그들을 보호해줄 만한 그런 존재는 그저 동화 속의 이야기일 뿐이다. 매일매일 자잘한 슬픔과 공포를 겪더라도 애초에 학습할 만한 그들을 다독여주는 존재가 없었기에 힘들 때마다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떠올리는 '마음의 고향'이 없다. 그래서 인생의 큰 시련이 닥치면 어디에도 숨을 곳 없이 망망대해 속 부표처럼 정처 없이 떠도는 느낌에 크게 사로잡힌다. 게다가 그들에겐 안정적으로 내면을 만들어갈 만한 어린 시절의 기회조차도 없었다. 그저 위협을 모면하려 본인 스스로 방어기제를 만들어서 내면을 꽁꽁 싸매는 식으로 자신의 정서적 안정감을 만들려 했기에 사랑을 받아봤던 아이들이 힘들 때마다 부모가 자신을 쓰다듬어주고 안아줬던 기억을 떠올리며 힘든 시기를 버틴다는 콘셉트를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더욱 이런 피해자의 마음을 어떠한 선입관 없이 받아줄 만한 그리고 정서적 안정을 도와줄 그런 상대가 필요하다. 그 누구도 완벽한 '구원자'는 될 수 없다. 그건 사람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점이 많은 인간이더라도 중장기로 보았을 때 건강한 관계를 만들 능력만 있다면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 수 있다. 환경이 안정적인 상황에서 충분히 잃어버린 부모의 자화상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

-물리적으로 가족 차단

물리적으로 나오는 것 밖에 없다. 이것밖에 해답이 없다. 이 질환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자녀라도 도피성 결혼을 자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성인이 되면서 부모와 같은 공간 안에서 살 자신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부모가 나와서 산다고 해서 그 영향력을 못 끼친다는 얘기는 아니다. 자녀가 여지를 준다면 언제든지 키패드 따고 들어와서도 그들의 숨통을 서서히 조일수 있다. 그래서 단순한 독립이 아니라 차단을 해야 한다. 위에서 말했듯 정상적인 정서적 체계가 잡힌 상태에서 누구에게 납치를 당해 트라우마가 생긴 게 아니라 인격이 안 다듬어진 상태에서 그런 부모 아래서 자라면서 엄청난 내면 체계의 손상을 당한 것이다. 평생 방관, 학대, 착취를 당하고 산 거기 때문에 피해자는 가해자에게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스킬 자체가 없다고 봐야 한다. 수년간 치료를 하고 온전한 치유와 재활을 다 마쳤다면 모를까. 초반에는 그냥 정말 끊어내야 한다.

부모들 중에 어떠한 인간적 감정도 다 못 느끼는 그런 사이코 패스 부류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때로는 자식에게 눈물로 호소한다거나 구구절절 편지나 장문의 글을 써서 보내는 그런 행동을 보인다. 정상인의 관점에선 이런 행동들이 화해를 하려는 제스처로 보일 수 있으나 이런 글들을 자세히 보면 자신의 과오에 대한 이해가 없다. 예를 들어
'가난한 집에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학대의 원인을 가난을 꼽음)
'아빠 없는 아이 안 만들어주려고 그렇게..' (학대의 원인은 남편 탓)
이런 부모 들은 애초에 자신이 잘못된 태도로 자식을 키우고, 잘못된 인생의 선택으로 인해 자식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그 개념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장황하게, 모호하게 그리고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게 많다. 내 부모 같은 경우는 정말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속마음을 더더욱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장기간 축적된 방관과 학대 아래 피해자는 부모와 '트라우마 본드/trauma bond'라는 걸 형성한다. 미디어에서 쉽게 나오는 스톡홀름 신드롬 같은 가해자에 대한 미화, 두둔을 말하는 것이다. 부모가 나에게 가하는 모든 아픔을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정신과 육체의 해리(dissociation), 방어기제 등으로 다 막아낸다. 미성년 자녀에겐 부모가 생존을 위한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에 부모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위협받고 크면 클수록 더더욱 불행 해질 것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다.

어른에게도 힘든 최대의 절망이 가족이 내 속을 썩인다는 것인데 힘없고 사고체계도 제대로 안 잡힌 아이에겐 소화도 가능하지 않은 최악의 진실인 것이다. 그렇기에 부모에 대한 모습을 최대한 미화하고 자신이 처했던 상황도 축소, 은폐시키려고 노력한다. 이런 아이들이 자주 하는 얘기가 '그래도 우리 엄마는 라면이라도 챙겨줬지.' , '그래도 나는 맞고는 안 자랐어.'이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의 기억을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부부싸움에 서로를 살해하겠다는 그런 섬뜩한 대화들이 오고 가고, 아이에게 '너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미 이혼해서 홀가분하게 살았을 거야' 같이 아이에게 가정의 불화 책임을 전가시키는 그런 말도 오간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대미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런 기억들을 모조리 파편화시켜버린다.

그래서 위와 같이 부모가 조금이라도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면 마음이 심하게 동요를 하게 된다. 최악의 상황은 그들에게 다시 돌아가는 것인데 이런 것도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단계별로 서서히 끌어들인다. 처음에는 혼자 살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며 괜찮은 듯 하지만 서서히 혼자 사는데 힘들지 않냐며 물질적 공세를 한다던가 아니면 대화에서 자녀가 힘든다는 티를 내면 자신이 자주 와서 살펴봐주겠다는 식으로 자녀의 삶의 영역 안으로 서서히 침범을 하게 되는 것이다. 슬픈 사실이지만 애초에 이런 여지를 주게끔 자녀들의 뇌는 그렇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그게 트라우마 본드이기 때문이고 이점을 부모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런 부모가 군림하는 가정은 정치범 수용소나 다름없다. 어떤 미끼를 쓰고 어떤 공포심을 자극해서 자녀를 조종하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는데 이는 군대나 수용소에서 자주 쓰는 것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자식에 대한 강압적, 독재적인 모습을 보이는 부모는 자식의 존재가 없어지면 가정 내에서 자신의 절대적 입지와 영향력을 행사하는데서 느꼈던 만족감마저 하루아침에 없어져 버리게 된다. 본인이 채우려던 자존감과 힘에 대한 열망이 병적으로 큰 것도 문제이지만 본인의 가장 소중한 혈육을 그 욕망의 제물로 삼았다는 면에서 그 문제의 뿌리가 너무 깊다. 애초에 자녀인 당신의 문제가 아니다. 일단 문제가 있는 사람이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고 자녀들을 그런 불행의 구렁텅이로 넣었다는 것에서 그들은 지탄을 받아도 싸기 때문이다. 이들은 본능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피해자와 연결고리를 다시 만들려는 시도를 계속하려 들것이다.

-가족과 연관된 모든 연결 고리를 끊는 것 (돈, 법적 부양 관련, SNS 계정, 전화번호, 그 주변 사람들)

앞에서 말한 대로 안전 확보라는 것은 아예 환경을 다 뒤집어엎어버린다는 각오로 해야 한다. 부모가 나에게 정서적인 방관과 학대를 했단 걸 자각한 상태에서 주변인들이 그들만의 사고방식으로 '그래도 부모인데 용서하고 화해해라' 그런 말을 해준다면 그런 사람들도 가차 없이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본인이 어렸을 때 만난 같은 처지의 친구들은 아직도 본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을 못하고 남들에게 배신당하며, 호구처럼 살았던 본인의 과거의 과오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걸 새로이 보게 될 것이다. 사람의 가치관과 생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당신 하나 스스로 바꾸는데도 수십 년이 걸리는데 주위 사람 하나하나 내편으로 만들려고 평생을 힘들 바에는 그냥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당연히 초반엔 가뜩이나 가족까지 다 잘라냈는데 주변에 아는 사람 없이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 기존에 있던 인연들에 목을 매게 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그들을 설득시키는데 이골이 날것이고 당신은 내면의 발전을 매일같이 거듭하는데 같은 자리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자각하지 못하는 그런 주변 사람들이 언젠가는 한심해 보이고 절망적으로 보일 것이다. 시간이 어차피 해결해준다. 결국 당신이 내면의 발전을 하는 만큼 그들과의 대화가 무미건조하고 짜증 나게 되어있다. 그러면서 자연히 그들에 대한 집착도 서서히 옅어져 갈 것이고 새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 두었던 인맥을 내버려 둔다면 부모들은 그 인맥을 이용해서 자녀에게 접근하려고 수시로 노력할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엔 연락 한 번이라도 오면 적어도 며칠은 후유증이 갔다. 이렇게 연락할 여지를 줘서 일 년에 10번 연락이 오면 3 x 10 이렇게 적어도 한 달의 세월이 당신의 인생에서 지워져 나간다. 지금까지 평생의 시간을 이미 부모들에게 할애했으면 그만큼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의 세월을 그들에게 빼앗기지 않았으면 한다.

-적절한 텀을 두고 상담을 받는 환경
상담은 수시로 받아야 한다. 안전을 확보했다는 것은 부모가 자녀의 인생에 더 이상의 해를 안 끼친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지만 수십 년간 축적된 그 상처들은? C-PTSD 치료의 본질은 내가 접했던 트라우마에 다 접근을 해서 감정적, 인지적 처리를 하는 것에 있다. 혼자서는 불가능하다는 건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책들을 보면 주에 2회로 하시는 케이스들이 있는데 이곳 호주에서도 보험처리를 하더라도 가격 면에서 한계가 있다. 하나 상담 사이에 간격이 너무 크더라도 환자가 그동안 느끼고 겪고 처리했던 경험들을 추려내기가 힘들다. 적당한 간격은 전문가와 상담 후에 결정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