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글에서 깊숙이 들어가지 못했던 부분들이 꽤나 있어서 내 현재 생활에 악영향을 미친 부분에 대해서 이어서 써보자 한다.
앞 글 서두에서 말했듯 나는 그 시기를 극복을 한 게 아니라 그냥 버틴 것이다. 그랬던 이유는 일단 내가 과거에 당했던 따돌림은 어떤 면에서도 결론이 지어지지 않고 세월이 지나서 나도 그 가해자도 졸업을 하게 되어 흐지부지 된 케이스여서 그렇다. 여느 피해자들이 그렇듯 나도 그 일에 대한 끝을 맺고 싶었다. 사과를 받고 싶었지만 그것도 안 되었고, 학교에 컴플레인을 걸고 싶었지만 불체자 신분이었기에 일을 키우지 못해서 침묵해야 했었고, 가해자는 학교를 버젓이 너무 잘 만 다니고 있었으며 나는 침묵 속에 그 상처가 깊어지는걸 마냥 참고만 있었어야 했다. 두 번을 따돌림을 당했으니 도합 6년의 중고등학교 생활을 아무런 답도, 끝맺음도 못 지은채 그렇게 버텼다.
중고등 시절 내내 계속된 상상 속의 싸움, 그리고 사그라들지 않는 복수심
나는 개인적으로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누군들 안 그렇겠냐만은, 정말 집요하게 늘어져서라도 끝장을 내겠다는 성향은 어렸을 때 더 심했고 일이 안 풀리면 그 일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인지 그 6년 동안 나는 내가 당한 따돌림의 원인도 찾지 못하고, 가해자가 벌을 받는 것도 보지 못한 채 머릿속에서 수천번 수만 번을 내 머릿속에서 가해자들과 싸우는 시뮬레이션만 돌린 거 같다. 그저 따돌림을 당했던 직후로 돌아가서 가해자들 면전에서 무슨 말을 해줬어야 내 분이 풀렸을까 하고 매일 상상했다. 이렇게라도 하면 내가 훗날 말싸움을 할 때 받아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 때문이었기도 하고 그때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어떤 행동도 못했던 내 무능함이 가슴이 사무치도록 원망스러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가해자들은 나의 존재를 이미 다 잊은 채 잘 만 살고 있는데, 정작 피해를 당했던 나는 매일 그들이 나를 외면했던 그 날을 떠올리며 매일같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랬기에 어찌 보면 나는 존재도 하지 않는 허구 속의 적들과 매일같이 싸움을 반복했던 것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내 손으로 어떻게든 나를 뜯어고쳐서 전투력을 키우고자 고심했다. 갓 입학을 한 직후 따돌림 주동자였던 K와 나는 영어 실력이 서툰 이유 때문에 모든 과목에 있어서 성적 하위권 반에 속해있었다. 따돌림을 당한 후 나는 매일 그 아이와 같은 반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거 자체가 견딜 수 없게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공부를 해서 그 반을 벗어났고 1년 반 만에 영어, 수학, 과학, 역사 지리 등 모든 과목을 다 상위급 반으로 옮겼다. K가 과체중이기도 하고 그 가해자 무리 중 어떤 아이가 내게 얼굴크기를 들먹이는 게 상처로 남아서 어떻게든 체중을 감량하려고 음식을 끊었고 그건 역으로 거식증을 안겨주었다. 가해자들에게 나 또한 하자 없는 사람이기에 이제 나는 호주 사람이 다 돼서 호주애들 사이에 끼어서 논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친구들과 일부러 무리를 지어 다니며 휴대용 스피커로 쩌렁쩌렁 힙합 노래를 틀고 다녔다.
타인을 의식하는 습관
매일 같이 허구 속의 사람들과 전투, 현실에서 조차 그들을 경계하고 의식하며 그렇게 6년을 살다 보니 나에게 있어선 타인을 의식하며 나는 그렇게 꿀리는 사람이 아니란 걸 보여주기 위해 겉치레에 신경 쓰는 습관이 생겼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까진 나는 남을 의식하지 않았고, 타인을 쉽게 내 가치관으로 속단할 필요조차도 못 느꼈고, 남보다 더 우월하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 자체가 없었다. 단짝이라고 할 만한 친구를 찾는데 시간이 걸려서 홀로 쭈구리처럼 지냈던 시절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주변 아이들이 나를 아예 배척은 하지 않았기에 그저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힘들다 여겼을 뿐. 그래서인지 내 겉치레, 명예, 성적, 학벌, 능력 이런 것들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된 것도 호주에서 중고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나서이다.
결국 성인이 되고 바닥난 정신력
이 6년간의 세월 간 이 상상 속의 싸움, 거식증, 불안, 부모로 인한 가정의 문제들, 신변에 대한 위협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나를 괴롭혀서 내 정신력은 아마도 고등학교 졸업하는 당시 다 바닥이 났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까지 내 학창 시절에 일어난 일들이 내 삶에 끼친 영향에 대해 더 파헤치고 싶지도 않았으며 이제 나는 다 훌훌 털고 일어났다고 정신승리를 했기 때문에 대학에서 내 정신이 무너졌던 일을 철저히 독립적인 사건이라고 치부를 했다. 하지만 이젠 좀 안 맞던 퍼즐들이 좀 맞춰지는 거 같다. 나는 대학에 들어갔을 때부터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성인이 되고 어느 역할을 떠맡았던들 버텨낼 수 없었다는 걸.
나르시시스트 엄마에게 내 인격을 짓밟힌 것만으로도 모자라 학창 시절 당한 따돌림은 나를 인간이 아닌 방어기제 그 자체로 만들어 버렸다. 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필요에 따라서 인생을 살아간다기 보단, 주변 사람들이 얼마큼 이뤄 냈는지 매번 염탐하면서, 내가 가진 능력 안에서 뽀대 나는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희망 아래, 진정한 목표의식도 사전 계획도 없이 얼렁뚱땅 삶의 목표를 정했다. 나는 그렇게 무시받을 사람이 아니란 걸 삶의 선택을 통해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달까. 남들은 나의 이런 의도에 어떠한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그렇게 남들 눈을 의식하면서 삶을 살았기에 20대 시절 내가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었다고 확실하게 못을 박지 못하겠다. 이것에 대한 자세한 포스팅은 이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나의 실패와 지지부진함에 대해 계속 머릿속으로 항변을 하는 그런 방어기제 또한 생겼다. 이 실패라는 것이 20대 초 중반에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했다. 20대 후반에 직장을 구하고 나서 이제야 비로소 이제 뒤처졌단 생각을 버려도 되고 다른 사람들과 나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어느 정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독한 패배의식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이 또한 내가 매일같이 상상 속에서 나를 따돌린 아이들을 상대로 나 자신을 항변하며, 마저 하지 못한 말들을 퍼부으며 그렇게 나를 단련시키던 시절 남은 습관이었다. 10대 시절 불법체류자라는 딱지 하나만으로도 나는 기본적인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이미 스스로 받아들인 상태라 내가 어떠한 노력을 하던 내 신변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이 패배의식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나에겐 부모가 만들어 놓은 이 신변상의 문제와 내가 지닌 가치는 별개라는 걸 알려줄 사람이 주변에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내 주변 환경이 바로 나의 인간적 가치와 연결된다는 왜곡된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20대 후반에도 내 부모의 비자 문제로 나는 골머리를 앓았었고, 부모는 그 모습 그대로 그들만의 구질구질한 삶을 영위하였기에 가정 상태만 봤을 때 내 주변 환경은 내 10대 때와 어느 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그렇게 내 인간적 가치도 과거 속 그대로 박제되어 있었다.
수년 전 나를 따돌렸던 무리들의 소식을 접한 적이 있었는데 너무도 개성 없이, 별 볼 일 없는 사람들로서 사는 모습을 보고 그들에 대한 복수심이 저절로 수그러들었다. 그 당시 나는 어떤 공부를 더 해서 직업적 전문성을 기를까 그렇게 고민하던 때였는데 내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복수 하노라 다짐했던 상대들은 마치 나와는 다른 차원에 살고 있는 거 같았다. 학창 시절 이쁜 척이란 건 다 도맡아 하던 애는 이제 푸짐한 모습으로 동네 식당에서 홀 서빙을 하고 있고, 따돌림 주동했던 여자애는 가족사진 보자마자 너무 뻔히 시시한 게 보여서 더 보기도 싫고, 어떤 애는 성령 안에서 다시 태어났는지 포스팅마다 성경구절 도배를 하는 걸 보니 예나 지금이나 머릿속 텅 빈 건 잘 알겠고. 뭐 저렇게 살 줄 짐작은 했건만 뭐 복수심이나 분노도 나랑 비슷한 선상에 있어야지 그게 발산이 될 텐데 과거를 다 떠나서 그냥 일상생활에서 마주쳐도 말 한마디 안 섞을 거 같은 그런 하찮은 인간들 한테 내가 신경을 쓴 그 자체가 너무 후회가 되었다.
그러면서 이들을 향한 적개심은 이제 갈 곳을 잃어 내가 살아가면서 만나 온 모든 나르시시스트들에게 향했다. 학창 시절 내가 한국 아이들을 광적으로 의식해왔던 것처럼, 대학 시절 그리고 20대 중반 나는 싸이월드, 페이스북을 통해 내 기분을 긁는 그런 싸한, 안하무인인 나르시시스트들이 살면서 어디까지 성공가도를 달려왔는지 수시로 확인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저들보다 내가 앞서 나갈 수 있을까. 나 같이 남들에게 착취당하고 사는 쭈구리들이 학업, 커리어에서 기념비적인 성취를 해야 어깨 피고 당당히 살 수 있고 그렇게 세상에 평등과 정의가 찾아오는 게 아닌가'라는 고민을 꽤나 했던 거 보면 내 20대 또한 방향성 없는 외부로 향한 분노, 복수심으로 점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시절 나는 그릇된 인성은 삶에 걸림돌이 된다는 공식을 어떻게 해서든 내가 그들보다 더 성공을 해서 입증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도전을 하기엔 내 정신과 체력은 이미 바닥날 대로 바닥난 상태였고 게다가 세상만사가 사람 마음먹은 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내가 입증하고자 했던 건 허구였을 뿐이고, 나는 그렇게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했더랬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 vs 세상의 나르시시스트들의 결투를 내 나름대로 머릿속에서 구상하고 매일 시뮬레이션을 돌린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얼마나 한심하고 무모하고 고독한 싸움이었던가. 감정에 제압당해 이성을 잃는 그런 그 시절엔 마치 풍차를 상대로 결투를 신청하던 돈키호테가 더 나아 보일 지경이었다.
여태껏 복수심, 분노를 원천으로 나는 꽤나 나 자신을 단련시키고 지금까지 왔다고 생각했고 이렇게 따돌림의 상처를 극복했다고 그렇게 정신승리를 극구 했던 건, 내 안에 아직도 상처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거 자체가 그 시절 내가 했던 전쟁에서 지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복수심이 내 삶을 장악하지 않았더라면 더 맘 편하게 살며 풀렸을지 아니면 엄마의 영향으로 인해 계속 망가졌을지 잘 모를 일이다. 장기적으로는 따돌림으로 인해 비롯된 습관들은 내 안을 갉아먹고 있었기 때문에 내 삶이나 내 생산력에 해가 됐으면 해가 됐지, 득이 될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 시절 정말 혜안을 가진 어떤 이가 어렸던 나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것과 네가 지닌 사람으로의 가치와는 별개의 문제다.
가해자는 그저 아무나 붙잡고 그게 네가 되었건 다른 이가 되었건 그런 짓을 계속해 나가야 하는 그런 습성을 지닌, 학교란 공동체에 어떠한 쓸모도 없는 사람이다.
왕따라는 건 피해자인 네가 가해자인 그들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전투가 아니다.
너는 그저 정말 재수가 없어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뿐인 거지.
거리에 정신 나간 부랑자가 행인을 붙잡고 소리를 지르며 싸움을 거는 바람에 뺨을 한번 맞았다고 해서 그 부랑자를 수년간 의식하고 따라다니며 그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 생각을 할까? 그냥 미친놈한테 맞았네 그러면서 지나가겠지. 그 미친 부랑자에겐 이미 삶이란 지옥과 같을 테니까. 그런 것과 같아.
남을 깎아내리고 내치는 것을 숨을 쉬듯 무의식으로 하는 이들에겐 그 타깃이 어떤 가치를 지닌 사람인지 이런 것은 중요치가 않다. 마치 정신 나간 사람이 타깃을 찾듯 그렇게 생각 없이 찾는 거지.
피해를 당한 건 정말 아픈 일이고, 세상에 뭔 이런 날벼락같은 일이 있을까 싶어 네 속이 많이 아프겠지만 그 원인은 너에게 찾을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삐뚤어진 인성에서 찾아야 하는 법이란다.
그 아이는 너에게 진정한 사람대 사람으로서의 전쟁을 선언한 게 아니라 반쯤 정신이 나간채로 그저 분 풀 상대를 찾았던 거야. 너는 그런 이를 상대로 마치 큰 전투를 벌일 것처럼 너의 삶을 다 쏟아붓고 있잖아.
이건 싸워서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야. 이상한 사람을 봤으면 앞으로 피하라는 교훈을 주는 것뿐이지.'
라는 말만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비로소 어릴 적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것이 현재의 나 자신이라는 것이 서글프고 한편으로는 내 내면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그때를 회상하며 제일 안타깝고 화나는 건, 내가 따돌림을 당했다는 것보다 내 곁에 진정한 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따돌림을 하는 가해자들은 주위를 돌아보면 어디에든 있다. 이런 습성을 가진 사람들, 특히나 나르시시스트 같이 인격장애를 지닌 이들은 숨 뱉듯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서클을 와해하는 게 부지기수인데 말이다. 내가 살면서 왕따 가해자와 싱크로율 백 퍼센트 인격파탄자들을 한 두명만 봤겠는가. 이런 이들은 그냥 도처에 널려있다. 하지만 가정에서부터 정서적으로 서포트를 받고, 성숙한 부모 밑에서 현명한 지혜를 물려받았더라면 이런 이들이 나에게 준 충격은 정말 세월이 지나며 자연히 치유가 되었을 것이다. 정서적으로 안정이 된 사람들은 어떠한 충격이 닥치더라도 회복력이 있기에 정말 시간이 약이 된다지만 나 같은 경우 따돌림이란 사건으로 6년간 내 속을 갉아먹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무서워서 도움을 요청 못하고, 역으로 케어도 받지 못한 채 그렇게 내 정신은 완전히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정서적 회복력이 있었더라면 따돌림 가해자를 한 번을 부딪치던, 50번을 부딪치던 결론적으로 내가 인지하는 나의 가치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리라.
싸워서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었거늘. 그냥 어깨에 묻은 사람 똥으로 인식했어야 했거늘. 이 근심은 또 얼마나 지속될는지. 내가 상상해낸 이 가상 싸움에 종지부를 이제는 찍고 싶다. 새해에는 타인들의 존재가 내 삶의 만족도에 더 이상은 아무런 힘도 못쓰는 그런 하찮은 먼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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