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남들이 가진 것이 좋아 보이니까 내 능력, 내게 주어진 시간과 상황 어느 여건 하나 맞지 않는데도 남이 가진 걸 목표로 삼고 내 삶을 무작정 그 틀에 끼워 맞추는 것은 나르시시스트들의 대표적 성향이다. 이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도 자주 보이는 모습이기도 한데, 나 또한 이런 생각이 가끔 불쑥불쑥 올라와서 괴로웠던 적이 많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이들은 삶에 대한 일관적 태도를 보이며 자신의 내면을 쌓아 올리는데 시간을 투자를 한다. 하나 나르시시스트들은 그런 것에 도통 관심이 없으니 나이 먹고 삶에 대한 공허함이 커질 수밖에. 나르시시스트 엄마 밑에서 나 또한 그런 문화에 적지 않게 물들었었다. 하지만 내가 그들과 달랐던 것은 일단 목표를 무리하게 잡지 않았다는 거고, 실패를 했으면 내 탓으로 돌리며 앞으로 그러지 말아야겠단 생각이라도 했다는 거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일단 겉치레의 끝판왕인 부와 성공, 명예에 집착을 한다. SNS상에선 마치 자신의 삶 자체가 끊임없는 목표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전시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게 자신과 가장 친하면서 제일 잘 나가는 애들을 계속 의식하면서 '어떻게 하면 쟤 콧대를 납작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마냥 머릿속으로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라, 그걸 또 행동으로 고대로 옮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쩜 저렇게 무모할까 싶을 정도로 인생에 중대한 결정을 어떤 심사숙고도 없이 충동적으로 내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 삶의 원동력은 남에 대한 시기 질투인데 성공도 실패도 다 타인의 의식에 의해 비롯된다. 그렇기에 자신과의 싸움을 반복해야 하는 삶은 그들의 사전에는 쓸 때 없는 일처럼 치부된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삶에 있어 견고한 철학, 믿음 같은 게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이러다 보니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거나 무르는 것도 자주 한다.
전 직장에서 본 예를 들자면 (내 뇌피셜이긴 하지만), 비혼 비출산을 다짐하던 나르시시스트 A는 PT 강사를 사귀게 되어 동거까지 가게 되었는데 옆자리 친한 동료 P는 그 당시 의대생과 사귀고 있었다. P는 여러모로 모든 여건이 A보다 좋았다. 가정사도 복잡하지 않고, 부모가 물심양면으로 서포트를 하는 덕에 부모 돈도 얹어 큰 차도 뽑고, 남자 친구도 미래의 의사이겠다 이제 프러포즈만 받으면 되는데 남자 친구의 졸업만 기다리는 상황. P와 A가 사무실에서 매번 노가리 깔 때마다 나오는 얘기들은 약혼에 반지 얘기뿐. A는 P가 반지만 받으면 되는데.. 이러면서 P 맘대로 할 수도 없는 청혼에 대해 늘 바람잡기 일쑤였다.
그러나 웬걸, 어느 날 A가 대뜸 자기 남자 친구가 청혼을 했다며 자기 결혼 소식 선빵을 날리는 게 아닌가. 비혼 주의라면서, 자기 성 바꾸는 거 싫어서 사실혼만 할 거라고 노래를 부를 때는 언젠데 말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A는 주머니 사정도 시간도 촉박한 탓에 지 좋자고 하는 결혼식 준비를 한다면서 사무실에 와서 매일 푸념만 늘어놓는다. 한국돈으로 천만 원 이하 수준으로 간소화하는 바람에 웨딩 플래너도 막판에 자르고 모든 걸 자기가 다 도맡아서 하는 데다가, 드레스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수선을 어디에 맡겨야 한다며 동분서주하고, 여기 결혼 전통은 부모 가락지를 물려받는 거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반지 녹여서 다시 만드는데 도합 천불 밖에 안 든다는데. 이게 자랑 섞인 푸념이라고 사무실이 떠나가라 큰 목소리로 늘어놓는 거 같았다. 아무리 들어도 자랑이 아닌데. 허접한 걸 싼값에 사는 건 능력이라고 하지는 않잖아.
나도 속물이긴 속물인가 보다. 다른 사람들 결혼 준비하는걸 몇 번 본터라 A가 하는 건 심하게 궁상맞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저럴 바엔 돈이 모일 때까지 기다려서 하던지 아예 식 자체를 스킵을 할 텐데 격식은 격식대로 다 차리고는 싶었나 보다. 본식에 리셉션까지 다 만불에 해결하면 퀄리티를 어느 선까지 낮춘다는 얘기인지. 게다가 그걸 또 3개월 안에 준비한다고 나서니 그냥 보는 사람 입장에선 왜 저렇게 본인 손으로 일을 꼬아서 삶을 힘들게 사나 싶더라. 돈을 얹어 주더라도 전문가에게 다 맡기는 게 맘도 편하고 퀄리티도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도통 이해가 안 갔다. 본식 단체 사진을 봤는데 황량한 갈대밭 같은 데서 찍은 거 같은데 무슨 시골에 있는 자그마한 카페에서 했다나.
그 후년에 P도 결혼을 했다. 그리스 사람 답게 오페라 하우스 보이는 하버 호텔 볼룸에서 성대하게 한 몇백 명 불러다가 드레스도 몇 번 갈아입으면서 그렇게 하루 종일 불살랐다고 하더라. 사진이랑 비디오를 통해 소식을 듣고 아 저게 내가 자주 봤던 결혼식이네 싶었다. 어차피 회사 동료라고 내가 그들한테 뭔 깊은 감정이 있겠나. 그냥 표면적으로 보고 아 얘는 시집 잘 갔네 뭐 이러면서 술자리에서 안주로 이용하는 것뿐. 모든 상황을 봐도 A의 결혼식은 심사숙고 끝에 간소하게 하길 결정했다기 보단 마땅치 않은 여건 때문에 두서없이 얼렁뚱땅 안 되는 상황에 끼워 맞춘 게 다 보이고, P의 결혼식은 그냥 적당히 돈 써가면서 스무스하게 간걸로 보였다.
속물에 꼰머인 내 뇌피셜로 볼 때 P는 A에 대한 어떠한 자격지심도 없었지만 나르시시스트였던 A는 P를 엄청나게 시기하고 의식했기에 그녀가 향하는 방향으로 여태껏 계속 허공에 쨉만 날렸던 걸로 보인다. 본인의 인생철학이라는 비혼까지 다 한 순간에 다 뒤엎고, 돈도 궁하고 시간적 여유도 없는데 격식을 다 차린 결혼식은 하고 싶고, 이렇게 우격다짐으로 결혼해서 얻는 이득이 뭐였을까?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이제 사무실에 와서 남편 흉보고 시모 흉보는 게 일상이 돼버린 그저 그런 기혼자가 되어버린걸 본인은 자각조차 하고 있을까?
사람은 배우고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본인의 생각이 수시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성장하기를 포기한거나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정말 살면서 받아들인 새 정보에 크게 동요를 해서 고심 끝에 과거에 자신이 믿었던 가치관을 내던지고 새로운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도 적지 않게 많다고 믿는다. 나 또한 내가 평생 믿었던 가치관과 믿음을 내던지고 새로운 방향성을 탑재해봤지만, 그건 번갯불 콩 구워 먹듯 그렇게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자아에 대한 위협과 혼돈이 엄청나게 뒤따르는 과정이다. 나르시시스트 A가 비혼을 내던지는데 이런 내면의 고통이 동반되는 성장의 고통을 겪었을까? 글쎄 올 시다 다. 나는 얘가 지보다 잘난 친구보다 앞서 갈 수 있는 방법은 결혼이라도 빨리 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기에 그런 무리수를 뒀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직장 이직도 P 따라갔는데 뭘. 애초에 그런 그릇이 못 된다.
결론적으로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보다 월등해 보이는 타인을 동경하고 그들을 맴돌며, 내 삶을 송두리째 저당 잡히는 한이 있더라도 걔들보다 더 높이 더 빨리 가고 싶어 한다. 결국 별 생각없는 이들을 향해 나르시시스트들은 어떻게든 이들에게 타격감을 주겠다고 허공에 쨉만 날리는 격이라는 거. 이렇게 눈에 닥치는 대로 주변 인물들을 이래저래 다 이겨 먹으려고 충동적 결정을 내리면 어느 여건도 따라주지 않게 되어있다. 삶에 대한 큰 선택은 준비와 계획이 다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본인의 그런 그릇된 질투심으로 인해 이런 기초공사들이 아예 안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더 높이 빨리 가기는커녕 삶에 있어 후회만 가득하고 개연성 없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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