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ting

뭔질 모르겠으면 그냥 쓰질 마라

Rambling on & about 2021. 1. 18. 12:01

디자인 계열에서 자신의 상품을 포장하고 싶은 욕망은 간혹 가다 자신의 무지를 들통내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특히나 순수 자연, 과학, 수학 계열에서 유명한 법칙의 이름을 자신의 작품의 '컨셉'이라면서 차용하는걸 디자인과 학부생에게서 흔히들 볼 수 있다. 사람들이 흔히 상식으로 통용되는 이런 단어와 연결 지어서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단 장점이 있다. 이 장점들을 다 상쇄하는 단점은 디자이너가 자기가 붙인 단어에 대한 의미나 맥락을 전혀 모르고 끼워 맞출 때 생긴다. 이런 걸 어떻게 칭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적 허영심'이라고 칭하겠다. 

 

링크드인에서 엄청나게 드라이한 유머 같지도 않은걸 올려놓고 하하호호 거리는 아재 어매들이 소위 교통 디자인 밈이라면서 올린 짤이다. 넷상에서 농담 까자고 만든 짤이 아니라, 진지 빨고 야심 차게 교통 체증을 해소할 만한 솔루션이랍시고 만든 교육, 계몽적 애니메이션 같은데 쫌 힙해 보이려고 밈이라고 부르는 거 같다. 

 

twitter.com/simongerman600/status/970792090840965120

 

Simon Kuestenmacher on Twitter

“Urban planning talks about the need to densify housing in sprawling cities. The same is true for traffic. Car based traffic has an extremely low density. Transitioning car based traffic to public and active transport frees up road space and improves flo

twitter.com

저 짤은 교통체증은 대중교통을 통해서 줄일 수 있단 메세지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거 같다. 자동차를 줄임으로써 그 공간을 지역을 위해 돌려주자는 취지의 애니메이션이다. 그래, 취지는 정말 좋다. 

 

하지만 슈뤼딩거의 고양이는 여기저기 소환되면서 영원히 고통받는다. 

 

물리학에서 슈뤼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이 불온전하다는걸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슈뤼딩거의 사고 실험 이전까지만 해도 양자역학에선 미시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그 사건이 관측되기 전까지는 확률적으로밖에 계산할 수가 없으며 가능한 서로 다른 상태가 공존하고 있다 했다. 이 실험을 통해 관측하지 않은 핵은 '붕괴한 핵'과 '붕괴하지 않은 핵'의 중첩으로 설명되지만, 한 시간 후 상자를 열었을 때 관측자가 볼 수 있는 것은 "붕괴한 핵과 죽은 고양이" 또는 "붕괴하지 않은 핵과 죽지 않은 고양이"라는 큰 결과의 차이를 보여준다는 걸 실험은 말하고 있다. 추후에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서 확인된 것처럼 대상에 대한 관측 행위가 대상의 상태를 결정한다라는것이 이 실험의 핵심적인 메시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흔히들 말하는것 처럼 죽거나 산 고양이가 동시에 존재한다라는 건 잘못 알려진 해석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단어는 위에서 보인 짤처럼 자동차의 이용 횟수를 줄여 확보한 공간을 공원, 지역 센터 등을 위한 공간으로 바꾸자라는 메시지랑은 아무런 연관이 없는 단어이다. 굳이 슈뤼딩거의 고양이라는 걸 붙이고 싶었다면 현시점 도시공학에서 널리 알려진 지론이 불온전 하다는 걸 역설로 보여주거나 (짤은 너무나 각광받는 도시공학의 이론을 그저 애니메이션화 한 것뿐이다), 대상에 대한 관측 행위가 도로의 상태를 결정한다는 엄청난 연구가 수반되는 새로운 이론을 제기했어야 했다. 아니, 애초에 자동차,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인간의 행동 패턴을 미시적인 분자의 활동과 연결 짓는 거 자체가 어불 성설이다. 교통 수단의 이용은 심리적, 경제적, 사회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인간의 자각 영역인데 이게 양자 역학과 무슨 연결고리가 있냐는거다. 

 

저렇게 왜곡된 해석으로 인해 슈뤼딩거의 고양이의 뜻을 잘 못 알게 되는 사람들이 또 생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그저 이 물건을 저 물건으로 바뀌 치기 하거나 여기에 있고 동시에 없기도 한 공간이라는 그런 단순한 콘셉트로 받아들일 테고 말이다. 자신의 작품이나 창작물이 그저 포장이 잘 되어서 소위 있어 보이면 본인한테는 너무나 좋은 일이겠지. 하지만 저걸 보고 잘못된 과학 지식을 받아들일 사람이 부지기수라면 이를 어찌 좋은 창작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나.   

 

그저 남들 면전앞에 좀 있어보이자고 자신도 모르는새에 잘못된 지식을 팔지는 말자. 청중이 과학을 모르니 그냥 뭉뚱그려 알려주면 되겠단 그런 마인드는 참 위험하다. 잘못 아는걸 바로잡는게 아예 백지 상태에서 가르치는것보다 더 소모적이기 때문이다.

 

발표를 하기전에 단어의 문맥과 핵심적인 뜻만 이해하면 되는 그런 단순한 일인데 이것도 안 하는 건 정말 문제가 있다. 모르면 그냥 쓰질 마라. 적어도 무지 뽀록나는건 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