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정리 중에 6년 전 이메일을 찾았다. 그 시절 나는 진짜 커뮤니티형 인간이었구나. 이렇게 사회생활을 하면 안 된다는 걸 다시금 되새기고자 올려 본다. 아직도 내가 성당에 가진 생각은 저기에 쓰여 있는 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다. 종교고 나발이고 큰 틀의 정신승리였다는 생각이 세월이 지날수록 더 강해진다. 그 당시 나는 이직 스트레스, 사회 초년생에게 집을 구매하자고 종용하는 엄마, 인간들에 대한 회의로 둘러 싸여 삶 자체에 출구가 없는 거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세상에 화가 많았고 그 화를 표출할 때 나오는 오만, 아집, 졸렬함 또한 차마 눈뜨고 봐주기 힘든 수준이었다. 저 당시에도 자기애는 심각한 수준으로 낮았다. 그냥 취직을 하고 일정 가도를 달리니 여유가 생겨서 자기애가 높아졌다고 착각을 했을뿐. 하여간 흑역사도 묻어 두기 보단 박제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저때 내 모습도 나의 일부분이니까.
저 글을 쓰고도 2년을 더 질질 끌다가 성당 자체를 완전히 관뒀다.
신부님께
안녕하세요. xxx xxxx입니다.
많은 고민끝에 이렇게 이메일 쓰게 되었는데요.
요즘 oo 공동체 내에서의 활동들이 제 신앙생활의 기반을 많이 흔들고 있고 그로 인해 많은 혼란에 빠져 있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일단 저에 대해 많이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맹목적인 믿음 때문에 성당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제 성격 자체가 의심이 많고 호기심도 많아서 특히나 저의 가치관의 일부분인 종교를 선택할 때도 제가 제 삶의 경험을 통해 얻어가는 지혜와 가톨릭 교리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기에 냉담을 풀고 성당에 나왔습니다. 저는 제 나이 또래에 비해 힘든 시기를 많이 겪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않았고 학교 때 왕따를 당해 3년간 거식증을 앓았고 대학 생활 또한 순탄치 않아서 우울증을 7년 정도 앓았습니다. 자살시도도 수차례 했고 그로 인해 정신병동에 입원을 한적도 있습니다. 제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고 뭐하나 제가 원하는 대로 갖지 못한다는 것에 분노했지만 세상 밖으로 나와야 내 머릿속에 꼬리를 무는 자기 비하와 피해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성당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 큰 경험과 제가 이것을 극복하는 과정 동안 저는 자존감, 결국 자기애를 되찾아 갔습니다. 내 결점이 무엇이든 그것을 받아들이고 소중히 생각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 과정은 제가 수없이 찾아봤던 심리학 관련 글들과 종교의 힘으로 얻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고 가신 십자가의 무게를 제 삶 안에서 찾을 수 있었고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다가와도 마음 편히 받아들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살시도를 통해 제 인생의 끝을 본 경험을 통해 앞으로 이보다 더 나쁜 일이 더 있을까라는 생각과 문제가 닥쳐도 맘 편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 그리고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남들과의 비교 그리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그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법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삶이 나아지는 방법을 위해선 모든 리소스를 다 취해서 나만의 가치관을 만들어가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이 되었든 불교 경전이 되었든 서양 철학이 되었든 가리지 않고 나만의 것으로 만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생각의 틀이 정형화되는 것을 거부하고 어찌 보면 제가 맹목적인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이유인 거 같습니다.
그런데 지난 수년간 성당에서 공동체를 위한 봉사를 하면서 제가 너무나 힘겹게 쌓은 자기애가 위협을 받는 일을 수차례 경험했습니다.
저는 신앙인이기에 앞서 세속에 직장과 가족의 일원이라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어떤 것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그 발란스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서약을 하기도 했지만 직장에 맡은 임무를 다하겠다는 노동계약서 또한 작성했습니다.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기에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몸담고 있던 단체들 지휘를 하시는 몇몇 분들은 이 발란스를 무너트리고 있습니다. 간부의 수장이라는 임무를 맡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저를 일주일 어느 때나 연락하여 특히나 업무 중 저에게 연락하여 일에 지장을 주고 전화를 받지 않을 시 저를 닦달을 하는 그런 경험도 있었고 어떤 분은 자신의 개인적인 디플로마 공부의 과제를 저에게 부탁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약 1년 반넘게 제가 밤에 잠을 줄여가며 그 단체 소속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번역 부탁을 받아서 해드린 것도 그 단체의 수장이 여태껏 했던 걸로 바뀌어 있더군요.
저는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당에서 한자리 맡아서 으스대려는 생각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자신이 호주라는 사회에서 못 이룬 권력욕을 성당 공동체에서 실현을 시키고자 하려는 몇몇 분들이 보이고 특히나 자신의 힘을 빌리지 않고 그 밑에 수고하는 단원들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려는 모습도 많이 보입니다. 저에게 새로운 삶을 주신 하느님이기에 저는 하느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전하는 도구가 되고 싶을 뿐이지 어느 공동체 멤버 개인의 과시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쓰이고 싶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그 공동체 일원으로 사람들에 대한 실망을 어느 때보다 더 많이 하게 되었고 세속의 제 직장에 맞먹는 끔찍인 모습을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사실 신부님과 같은 건으로 면담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파푸아 뉴기니에 갔다 와서 조용히 단체 생활을 정리하자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으나 오히려 제가 가진 혼란이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충격적으로 들리실진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는 이 이벤트는 보여주기 식 전시행정과 다를 바 없는 이벤트 같고 청년들에게는 보람된 시간을 보냈다는 허상을 심어주는 잘 포장된 관광상품 같습니다. 파푸아 뉴기니의 실정은 참 놀랍고 충격적이죠.
하지만 노던 테리토리와 같은 호주 오지에 있는 원주민들 실정은 더 충격적입니다. 방 2개의 허름한 판자 관사에서 80명이 집단생활을 하고 이들의 평균 수명은 45세를 넘기지 못합니다. 건강이나 영양상태 또한 심각해 아프리카 빈곤국 수준이라는 통계자료도 있습니다. 더 멀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시드니 시티에 센트럴 다음 정거장 레드펀이란 동네에는 핍박받고 소외된 원주민들 동네가 있고 철거와 강제이주를 반대하여 텐트를 쳐놓고 텐트 대사관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것 같습니다. 내 옆에 더 고통받고 신음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왜 굳이 해외까지 가야 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파푸아 선교단은 호주 가톨릭 신문에 자신들의 미션 트립을 홍보하고자 에디터에게 컨택을 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 에디터에게 이메일로 홍보 요청문을 직접 썼거든요. 헤드라인으로 뽑아내기 정말 좋은 일이겠죠. 하나 시드니 한인 공동체가 호주에서 "자기들끼리만 붙어 있는 폐쇄적인 공동체"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호주 사회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법을 물색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에 참여한 사람들의 그 순수한 마음까지 폄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 저는 봉사에 대한 시각이 다소 편협해 보이고 이런 band aid 식 봉사는 저희의 마음은 뿌듯함은 채워 줄지 모르나 이 세상의 발전에 효율적인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몇몇 청년들에게서 그런 어른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아직 많이 어리석고 건방지고 한국식 사회에선 모난돌로 분류되기 쉬운 그런 당돌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 제가 누구 앞에서 당당하게 제 입장을 전하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저를 위해 세상에서 대신 싸워줄 사람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저의 개방적인 사고방식과 다름을 포용하지 못하고 저의 발언을 멸시하고 묵과하는 이런 공동체에선 저의 앞날은 없는 거 같습니다. 모든 것에 순명하라는 성모님 말씀을 따르는 레지오 단원으로서 제 자신이 많이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가 아주 잘난 사람이 되었다는 허상에 사로 잡히는 우는 범하고 싶지 않고 그리고 하느님의 뜻이 아닌 개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이용당하는 일은 더더욱 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에게 신앙생활은 남들 보기에 은혜 더 받고 더 좋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 부족함을 알아가고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여정입니다. 하느님을 믿어서 제 삶이 더 윤택해지고 복 받았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오히려 더 힘들었거든요. 저는 아직 믿음이 깊지 않아 하느님이 다 해주시겠지라는 맹목적 믿음보다는 내가 개척해가는 삶이라는 길을 더 현명하게 다질 수 있는 영감을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20대 후반 들어 제 자신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아가는 과정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하느님께서 달리 변화시켜주신 거 같습니다.
저로써는 성당에서 개최하는 행사나 상위에서 배당해주는 활동 어느 것도 순수한 의도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레지오 단장을 하면서 가면을 쓰고 마음에 우러나지 않는 훈화를 하고 제 기준에 하느님의 사업과는 거리가 먼 봉사들을 하라고 단원들에게 배당해주는 이런 일들 조차 제 양심에 가책을 느낍니다. 이런 제가 무책임하게 보이신다고 저를 나무라시면 저도 할 말은 없습니다. 하나 저는 이미 3년 첫 번째 단장직을 이미 마쳤고 지금 연임한 지 1년 반 정도가 지난 상태입니다.
아무튼 말이 너무 길었네요. 오히려 저에게 소중히 일궈놓은 가치관을 바꾸고 입을 다물고 좁은 시각을 가지라는 그런 숨 막히는 공동체에서 벗어나 그 거리를 두고 찬찬히 내가 믿는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분께서 진정 저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가고 싶습니다.
아직 xx 쁘레시디움 단장 내정자는 뽑지 못했는데요. 그것은 zz 단장님과 상의해본 후 해결하겠습니다. 그 외에도 사회 복지분과의 총무직, 홍보분과 단원, 성당 역사 찾기 회 단원, 기도회 단원 다 마무리 짓고 싶고요. 파푸아 뉴기니 봉사의 마무리도 이로써 짓고 싶습니다.
로컬 성당은 계속 다닐 예정이고요. 제가 사는 곳에서 5분 떨어진 로컬 성당의 노숙자 급식 봉사를 할 계획 중에 있습니다.
아무쪼록 몸 건강히 사목활동 무사히 마치시길 기도 중에 항상 기억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xxx xxxx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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