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SD 회복

질투라 칭했던 것들

Rambling on & about 2020. 12. 24. 10:36

과거에 내가 느꼈던 피해의식, 그 당시 내가 질투라고 뭉뚱그려 억제하려고 했었던 감정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중학교 시절 나는 같은 아이로부터 두 번을 따돌림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른에게 어떤 말도 못 하고, 전학도 못한 채 그렇게 중고등학교 과정을 주동자 아이와 그 무리들과 같이 마쳤다. 

 

분노

 

그 시절 나는 분노라는 감정을 표출할 수 없었다. 일단 내 가정환경이 너무 좋지 않았다. 비자 상황으로 나를 다른 학교로 전학시킬 수 없었고 돈에 대한 집착과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엄마는 거의 공짜에 가까운 현재 학교에 나를 보내는 것만큼 더 나은 방도가 없었기에 가해자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를 해서라도 학교 생활을 내가 알아서 마무리지으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나에게 있어 내편을 들어줄 사람은 그 어느에도 없었다. 부모라는 사람들은 나를 혹 취급하기 일쑤였다. 삶에 있어서 큰 고민거리가 있을 때마다 부모, 특히 엄마라는 사람은 그 문제의 원인은 나에게 있다면서 몰아세우는 방식으로 자식이 가진 문제에서 손을 털어내는 게 주특기였다. 그랬기에 나는 내가 겪는 모든 문제들은 오롯이 내가 짊어져야 하는 짐으로 인식해서 부모에게 어떠한 이야기도 털어놓지 않았다. 

 

학창 시절 나의 분노는 극으로 달해있었다. 나에게 잘못한 이들을 물리적으로 처벌하고 싶었던 욕망이 너무 컸다. 그들의 얼굴에 침을 뱉고, 발로 겉어 차고 머리채를 흔들어 잡는 그런 상상이 불현듯 떠오를 때마다 머릿속 내가 마치 그들보다 더한 악인으로 변하고 있다는 착각에 그런 상상을 하는 게 무서워졌다. 내가 현실적으로 어떠한 행동을 못하는 데다가 부모 혹은 선생의 도움을 통해 그들에게 사과를 받는 것조차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서 나는 그들을 처단하고 싶다는 욕구는 들끓어 오르고 그건 마치 내가 통제할 수 없이 계속 불쑥불쑥 찾아오게 되었다. 흔히들 내게 무언가가 허락되지 않으면 그것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이 더 커지듯이, 나에게도 가해자들을 벌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 때문에 더더욱 그들이 파멸하는 상상에 더 집착하게 되었다. 

 

그 당시엔 사람에겐 여러 가지 감정이 있으며 그게 파괴적인 분노 같은 감정일지라도 그것 조차 사람인 나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그 누구에게서도 배운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부부 싸움을 할 때마다 집기를 깨부수고, 가족에게 내뱉어선 안 되는 그런 패륜적인 막말에 짐승같이 포효하는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그저 저렇게 밑바닥인 인간은 되지 말아야 다짐만 했었다. 그러다 보니 어린 나의 머릿속에는 폭력적인 분노 표출은 금기사항이 되어버렸다. 그 불씨에 기름을 부은 건 내 엄마의 나르시시즘도 한몫을 한다. 엄마는 아빠의 그런 모습을 인간쓰레기라면서 내 앞에서 폄하해서 아빠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들었고 엄마 자신은 나에게 분노를 퍼부을지언정 '자신의 분노는 원인이 다 있어 정당한 분노'라는 헛소리를 지껄였다. 그리고 나르시시스트의 자녀들이 다 그렇듯, 내가 감히 엄마인 자신에게 강한 감정표현을 하는 건 용납이 되지 않았다. 

 

분노 분출에 대한 집착 그리고 이어진 착각

 

그렇게 분노를 억제하면 억제할수록 나는 이 화를 어떻게 삭여야 할지 몰랐다. 게다가 분노로 인한 상상을 키워가면 갈수록 나도 막장 인성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 두려움이 불안으로 이어졌다. 이 머릿속 싸움이 수년간 지속되면서 결국 

 

1. 내가 바꿀 수 있는 나의 모든 것을 바꾸려는 노력.

2. 가해자를 향한 내 분노를 그저 질투로 생각하고 넘기려는 태도로 이어지게 되었다. 

 

1. 내 모든것을 바꾸고 싶었던, 허망했던 노력

 

나는 내가 바꿀 수 있는 한도 안에서 나에 대한 모든 걸 바꾸고 싶었다. 그래야 진정 이길 수 있는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는 따돌림 주동자와 가해자들을 스스로 벌할 수 없었고, 정말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인해 학교에서 사고를 치게 되면 불체자인 우리 가족에게 불러올 파장이 너무나 컸었다. 가해자들을 향해 어떠한 것도 못하는 이 환경 탓을 하면서 그렇게 늙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나를 뜯어고치면 언젠가는 나도 떳떳하게 저런 이들을 맞서 싸울 수 있지 않을까란 욕심이 더 컸다.

 

중고등학교 때는 오로지 성적과 체중에 집착했지만 20대에 들어서는 '나'를 이루는 요소가 꼭 이런 스펙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교적이지 않던 내향적 내 모습이 아무래도 과거에 걸림돌이 된 거 같아 어떻게든 사람들과 어울리면 고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대학교 동호회도 따라다녀 보고 파티도 가보고 그렇게 꾸역꾸역 성격 개조를 하려고 부단히 도 노력했다. 외향적인 사람들처럼 화술도 좀 단련하고 20대 문화에 대해서도 좀 빠삭해야 할 거 같아 공연도 줄곧 다니고, 사회생활도 해야 하니 알바에 사무 보조일도 하고 그렇게 나에 대한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것저것 허점 투성이인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나는 이렇게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본적인 모습에 대해 강한 부정을 했다는 거였다. 원래 내가 가진 내향적 성격, 큰 체구, 자존감, 동양인으로서의 모습 등 내가 지닌 모든 것이 내가 추후에 할 복수에 다 적합하지 않은 요소들이고 더 나아가서는 '사람이라면 가져서는 안 될 모습'으로 그렇게 비쳤다. 기존의 내 모습이 그렇게 혐오적으로 보이니 앞으로 살아남을 생각에 너무 답답해져 나를 뜯어고쳐지고 싶어 지는 마음은 더 커져만 가고, 세월이 흘러감 속에 알 수 없는 초조함에 내 목이 졸리는 거 같고, 애초에 고칠 수 없는 걸 고치길 염원을 하니 그 과정에선 좌절만이 가득했다. 마치 없는 손금을 만들려고 하거나 짧은 엄지 손가락이 마음에 안 든다며 그걸 늘리려고 하는 그런 목적도 없고 방향성도 없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내가 이렇게 헛수고를 하면서 얻은 건 사회에 대한 공포증을 어느 정도 벗어났다는 것과 내 성격과, 취향, 그리고 체구는 바꿀 수 있는 영역에 있는 것들이 아니고 인위적으로 꾸역꾸역 인생을 끼워 넣으면 아주 큰탈이 난다 이 정도였다. 나는 내게도 취향이 있고 이걸 토대로 인생을 설계했어야 했단 걸 20대 중반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그게 아주 큰 깨달음이었는데 그것에 대한 단서는 이미 내 초등학교 시절부터 있었지만 철저히 무시한 내 불찰 때문에 먼길을 돌아온 것도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삶의 지혜에 대한 책으로 위안을 삼아 살았고 인문학적 책들을 유난히도 좋아했다. 건축을 했을 당시에도 에세이를 쓰려고 도서관에 갈 때마다 미학에 대한 이론에 어떻게 빠져서 커리큘럼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그런 철학, 문화 비평 이런 것만 읽으면서 시간을 허비했던 적이 있었다. 휴학을 하면서 읽게 된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해 수업 같이 듣던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었는데 어떤 리액션도 나오지 않아서 서글펐기도 했고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건축과에서 그런 말을 꺼낸다는 거 자체가 이상하기도 하다. 전공을 잘 못 선택해도 한참 잘 못 선택했기 때문이다. 참 어린 시절 나는 내가 좋아하고 끌리는 것을 그렇게 무시하고 살았구나 라는 생각에 새삼 안타까움을 느낀다. 

 

2. 가해자를 향한 분노를 질투로 착각

 

나는 분노 표출에 대한 어떠한 배움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분노하는 것은 상대방을 도발하는 것으로 인지 했기 때문에 내가 대들고 싸워서 이길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당연히 도발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을 억누른다고 해서 사라지진 않으니 이런 감정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 때마다 복수에 대한 상상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어렸을 시절 나는 내가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것은 내가 실제로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내 자제력을 항상 의심해왔다. 만약 엄마가 나에게서 빼앗아간 닌텐도 게임보이를 엄마에게 대들며 가지려고 실랑이를 벌이는 상상을 하다가 정말 내가 무의식 중에 허튼소리를 해서 엄마를 도발을 하게 되면 엄마는 나를 심문할 꺼고 엄마의 것을 탐한 것에 대한 징벌을 받을 텐데..라는 생각의 고리는 훗날 사춘기 시절에도 지속이 되었다. 엄마를 죽이는 상상이 불쑥 올라올 때마다 정말 이런 생각을 이어가다가 내가 행동으로 옮기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그런 상상조차도 스스로 단죄하기 시작했다. 이는 내가 하는 모든 상상에 적용되었고 이런 나쁜 상상들은 나를 범죄의 구렁텅이 또는 인생의 거대한 실패로 몰아넣을 거란 두려움에 이런 상상을 결국엔 질투로 치부하고 무시하려고 했다. 

 

따돌림을 당해서 생긴 분노의 경우엔 그 원인이 분명하고 그 분노에 대한 합당한 처리를 해서 사건을 종결시킨후 분노가 해소된다라는 공식이 함무라비 법전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콘셉트가 아닌가 싶다. 분노는 원인, 결과, 목적이 뚜렷이 있는 감정인 것이다.  하나 질투 같은 경우는 그 원인이 불분명하고 되리어 남을 시기 질투를 하는 사람이 원래부터 뭔가 크게 잘못된 사람이 되어버리는 그런 감정이다. 질투가 난다는 것은 쉽사리 남에게 고백할 수 없다. 인성의 흠결이라고 치부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시절 내가 감정 컨트롤을 한답시고 했던 건 내가 당한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화를 내는데 화를 내는 나를 '게으르고 남이 잘되는걸 그냥 못 보는 그런 놀부 심보를 가진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을 찍는 그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CPTSD를 겪는 이들에게 제일 걸림돌이 되는것이 toxic shame이다. 어려서부터 부모가 학대 또는 방관을 하고 혹 취급하게 되면 나 자신이 존재하는 거 자체를 부끄러움으로 여기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사람의 가치관에 깊이 뿌리 박이게 된다. 나도 사춘기에 들면서 결국 나는 보잘것없고 미천한 인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살면서 당하는 모든 불이익 또한 세상의 이치가 아닐까 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 같다. 그 누구도 내가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도움을 줄 수 없으니, 그냥 원래부터 이랬던 거라고 나름 정당화를 했던 것이 위와 같은 문제로 불거진 거 아닌가 싶다. 

 

내 삶을 돌아보면 내가 극단의 우울증에 치닫았었을때 말고는 전반적으로 다른 사람들 질투를 잘하지 않았다. 나 자체를 미천한 존재로 여기며 평생을 살아와서 그런지 남들과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그런 권리의식 (entitlement)조차도 없었기 때문에 '왜 쟤는 되는데 나는 안 되나' 하며 역정을 낸 기억도 없고 그냥 나의 인생은 남들과는 그냥 시작부터 다 다르다고 생각했다. 천성이 겁이 많아서 안 될 거 같은 건 애초에 탐을 내지도 않았다. 빚을 져서라도 비싼 차, 비싼 옷을 입는 그런 풍토도 자신의 신용등급을 자기 손으로 망가뜨리는 행동처럼 보였다.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추구하면 남는 건 출혈뿐이라는 걸 이미 가정에서 많이 배웠던 거 같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특정 사람들이 잘 되는걸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던 건 그들에게 나를 따돌림시킨 가해자들을 투영을 해서 '저런 말종들이 잘 사는걸 세상은 그냥 두고 보고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 때문이었지 마냥 '저런 순탄한 삶은 나도 당연히 누렸어야 하는데'라는 그런 원초적인 시기, 질투, 박탈감은 아니었던 거 같다. 솔직히 남들을 시기 질투하면 또 어떤가.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 질투가 병적으로 발현돼서 주변 사람들의 인생을 망가트려서라도 그들의 것들을 취하고 싶은 그런 인간 말종도 아닌데 말이다.  

 

이 두가지를 이번 주에 깨닫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감정 소모가 있었다. 내가 나에 대해서 정말 몰랐다는 것에 놀라웠기도 했고 나 자신을 그렇게 철저하게 부정하며 살아오면서 내 삶에서 나라는 존재를 지워버리려고 노력했었단 사실에 소름이 돋기도 했고 말이다. 그저 자연스러운 인간으로서의 감정과 상상을 단죄했던 과거 속의 내 모습이 안타깝고, 어이가 없고, 슬퍼 보이고 애처로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