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SD 회복

Emotional Flashback

Rambling on & about 2020. 11. 26. 07:22

감정적 플래쉬백이란 인지능력이 발달되기 전의 유아시기에 트라우마에 처했을 때 (반복적, 지속적으로 학대에 노출되어 그 강도가 쌓아 올려진 발달적 트라우마) 그 당시의 상황이 전혀 이미지 되지 않아 기억 속에 떠오르지는 않지만 그 당시 느꼈던 감정만이 뇌리에 남아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지속적인 학대 (폭력, 정서적인 강압, 방치)에 노출되면 이는 발달시기에 아이의 뇌 구조를 바꿔놓는다. 유아에겐 어른의 이런 부적절한 육아가 지속될 경우 자신의 삶이 위험에 노출될 것이고 이는 죽음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게 된다. 이때 자기 파멸에 대한 두려움 같은 감정만이 기억 속에 남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일단 전문가가 아니고 나 좋자고 철저히 이런 걸 겪는 환자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거기 때문에 나의 경우엔 이게 두려움이었고 다른 감정이 일차적으로 오는 경우는 잘 모르겠다.

 

일부러 시간과 목적을 두고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에게 있어 기억이란 어떠한 뚜렷한 목적없이 무분별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트라우마에 노출된 사람이라면 이 트라우마 재생이란 어느 특정 지을 수 없는 원인에 인해 일어난다. 무의식적으로 어느 트리거에 의해 재생된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엔 어느 것을 목격하였길래 무의식적으로 옛 기억이 떠오르는지 대부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 트라우마 재생이라는게 PTSD처럼 사고, 전쟁, 폭력 같은 경험에 의해 생길 경우 왜 기억이 나게 되었는지 원인은 모르는 경우는 있어도 그 기억나는 것에 대한 디테일은 어느 정도 특정 지을 수 있다. 그 끔찍한 경험이 되살아날 때는 그때 목격했던 비주얼적인, 오디오적인 요소, 그 외에 내 몸이 느낄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측면들 그리고 내가 느꼈던 감정까지 다 부각이 된다. 그래서 그런 오감을 아우르는 것들이 재생되면 그때의 그 경험이구나 하고 특정 지을 수 있는 것이다.

 

허나 emotional flashback이라는 건 내가 유아기 때나 덜 발달되었을 때 생성된 온전하지 않은 기억이기 때문에 감정적인 기억만 남는 경우다. 그러기에 기억의 회상 대신 갑자기 멋모를 두려움이 올라온다.

 

나는 평생 내가 공황에 가까운 두려움이 올라올때마다 그냥 내가 그 시절 두려움을 느낄 만한 문제들이 작용했었기에 그에 알맞은 리액션이 올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리가 있는 것이 부모랑 같이 살던 30년에는 정말 인생이 무너질만한 문제에 직면한 적이 꽤나 많았기 때문이다. 나의 의중은 물어보지 않고 이민을 강행해서 만족스러운 학교 생활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친구도 잃고 말도 잘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내 부모는 그냥 이곳에서 돈벌이를 하면 훨씬 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법체류를 15년가량 했는데 같이 사는 내 입장에서는 언제나 이민 경찰이 들이닥쳐서 이들을 (성년이 되기까지는 나도 포함) 데려갈 수 있는 상황이 15년 지속된 것이니 이런 것도 한몫했다. 부모의 무모함이 이런 상황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갔다고 보면 된다.

 

내가 자주 느끼는 두려움이 상황에 대한 리액션이 아닌, 학습된 두려움이란걸 깨닫게 된 계기는 내 인생에서 부모란 존재를 지워 버리고 난 후였다. 부모의 부재는 타인이 내 인생에 직접적으로 끼칠 수 있는 위험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직장도 안정된 탓에 해고를 당할 위험도 현저히 낮으며 인간관계도 안정적인데다가 의식주 해결도 문제가 없는데 왜 이런 두려움이 올라오는 것일까. 이 두려움의 원인을 찾기 전엔 일단 어떤 식으로 이 두려움이 내 인생을 좀 먹어가는지 알아봐야 한다.

 

내 인생에 있어 나를 좀먹는 두려움은 대강 두가지이다. 이 두려움이 전개되는 방식은 대충 이렇다.

  1. 일의 무한반복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식이고 이를 행하지 않을 경우 파멸에 직면한다는 느낌. Exposure to endless work will maintain my existence – Workaholism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나는 급작스레 내 삶이 일촉즉발의 상황에 처해졌다는 그런 인상을 받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공황을 느낄 정도가 있을 정도로 내 각성 상태는 급도로 올라가 있다. 마치 잠을 깬 상황이 아니라 이미 몇 시간의 노동을 했단 느낌이 들 정도로 그렇게 업된 상황이다.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에 처해졌다는 생각은 갑자기 내가 “했어야 할”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떠오르지 않는다) 일들이 무궁무진하게 떠오르고 이 리스트를 내가 오늘이란 시간 안에 끝내지 않을 경우 내 인생은 걷잡을 수 없이 바닥으로 내리꽂을 거란 감정에 사로 잡힌다.

 

이 감정은 내 심장을 조여오고 호흡을 가빠지게 만들며 상체를 뺀 나머지 몸에는 힘이 풀리게끔 만든다. 아침에 주로 떠오르고 간혹 가다 잠에 들기 전에도 떠올라서 잠을 못 이루게끔 만들 경우도 있다. 하루에 2-3번 이상 떠오르고 아침에 떠오르는 건 잔상이 꽤나 길게 지속이 되어서 1-2시간 이상 갈 때가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나르시시스트 엄마에게 길러질 때 아이들이 그냥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그냥 ‘내던져지는’ 그런 경우에서 비롯 된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르트르가 말한 ‘세상에 내던져진다는 두려움’이 이것과 비슷한가 싶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들은 아이의 욕구를 무시하고 이 욕구를 되리어 아이가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느냐 마느냐에 따라 엄마인 자신에게서 하사 받을 수 있다고 무언의 딜을 하는데서 비롯된다. 나르시시스트 엄마에게 있어 아이가 엄마에게 즐거움을 주는 방법은 아이가 스스로 본인에 대한 모멸감을 느끼고 엄마에게만 복종하고 엄마를 찬양하며 심각할 때는 (엄마가 사디스트 성향일 땐) 아이가 위험에 처해서 고통스러워할 때다. 그렇기에 아이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본인이 본인 스스로 욕구 충족에 대한 갈망을 버리고 엄마가 본인을 어느 개 같은 상황에 밀어 넣든 간에 군말 없이 견뎌내고 엄마를 신처럼 모시고 살아가야 한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들이 아이를 방치할 경우 아동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기본 권리 찾기에서 비롯된 문제까지 아이 본인의 문제가 된다. 이런 부모의 관점에선 자신일 짊어져야 하는 부모로써의 의무 자체도 아이가 태어남으로써 비롯된 것이라 보고 이로 인해 일어나는 모든 것들도 다 아이가 초래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스스로 태어나지 않는다. 이런 부모들은 기본적인 인과관계 자체도 삶에 응용할 능력이 없다고 봐야 한다. 아무튼 나 같은 경우엔 본인의 생존에 대한 문제 + 부모가 본인에게 화를 내거나 자신의 신세 한탄을 할 때마다 아동인데도 불구하고 부모에게 감정적인 서포트를 주어야 했고 + 사춘기 이후로는 영어가 가능했기에 부모의 비즈니스에 있어 소통 문제는 다 내가 담당해야 했고 + 용돈 벌이 + 학업을 진행했어야 했다.

 

난 한번도 오롯이 아이 같은 삶을 산적이 없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나 다른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 부모를 가진 아이들도 대강 나와 같은 삶을 살았을 거라 생각한다. 이런 부모들은 아이에게서 ‘아이로써 느낄 수 있는 자유와 행복’ 자체를 송두리째 빼앗아 간다. 유년시절 자체가 없는 것이다. 어린 나이부터 나는 어른이 느낄 만한 강도의 책임감과 물리적 감정적 노동에 노출되었다. 부모가 스스로 자신이 만든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니 부모의 문제까지 내 몫이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나는 어려서 부터 죽음에 두려움에 인해 스스로 무한한 노동을 하게끔 나 자신을 속박하는걸 일종의 생존 전략으로 터득한 것이다. 부모 아래서 케어를 받아야 하는데 부모보다 앞장서서 가족의 생존을 걱정하는 이런 패러독스가 생긴다.

 

이는 직장에서 내 일이 아닌데도 남의 일까지 내 몫이 아닌가 걱정을 하게 되고 상사나 다른 직원들이 나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더라도 이것에 내가 일정 지분 원인을 제공하고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까지 연결된다. 그래서 내 꿈은 커리어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직장에서 생기는 모든 일에 내가 책임을 일정 부분 가지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내 꿈은 사장이 되어 사장으로서 월권을 쥐고 사장의 지위를 누리며 떵떵거리는 게 아닌데 사장으로서의 책임감은 느끼는 말단 직원.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 두려움은 매일 같이 나를 찾아와 내 인생을 좀 먹었다. 이 걱정이 지속되면 되리어 삶의 능률이 현저히 떨어지고, 미래를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되며 (매일 노예처럼 일만 해야 된다고 생각하라. 그러면 내일이 더 이상 기다려지지 않게 된다), 인생에 있어 낙이라는 걸 떠올리려고 해도 쉽게 떠올려지지 않으며 결국엔 번아웃이 와서 내가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꿈을 꾸게 된다.

 

2. 싫어하는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만일 벗어나게 되면 아무도 나를 받아주는 환경이 없을꺼란 두려움. Feeling of abandonment

 

난 유치원때쯤 5살 정도 시절에 부모를 부정하는 판타지를 많이 했다. 단칸방에서 부모 옆에 누워 잠들기 전 이불에 누워서 자주 하는 생각은 ‘내 부모가 내 부모가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 내 친부모가 갑자기 나타나서 나를 이 환경에서 구원해줬으면 하는 바람, 내 부모가 갑자기 나에게 어느 날 깜짝 고백을 하길 ‘이전까지 내 모습은 어쩔 수 없이 써야 했던 가면이었고 나는 사실 이러이러한 능력이 많고 자상한 사람이다’라고 하는 환상 등.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내 부모가 친부모이고 이 인간들과 평생 가야 한다는 씁쓸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지만 아주 어려서부터 부모가 내게 부모같이 행동을 안 한다는 건 정확히 짚고 있었던 거 같다.

 

단순하게 그냥 부모에게 버림을 받을꺼라는 두려움보단, 부모가 죽도록 싫고 이들 밑에서 사는 거 자체가 지옥 같은데 이들을 떠나서 미성년인 나를 받아줄 가족이 어디에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오는 두려움에 항상 시달렸다고 생각한다. 내 부모는 나를 버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자식을 가지고 있다는 건 남들에게 있어 나는 그래도 정상인 범주의 자식을 기르는 책임감 있는 부모라는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 플러스되는 요인이 많으며 엄마 같은 나르시시스트 같은 경우 자신을 동경하고 찬양해 줄 힘없는 그런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에 더더욱 자식은 나르시시스트에게 있어선 최고의 도구인 셈이다.

 

3살경에 지하수 나오던 사글세 방 살 시절 애를 집에 혼자 두고 새벽에 엄마가 옷가게 물건을 떼러 동대문에 갔는데 이른 아침에 내가 대로변에 거의 나체로 나와 엄마를 찾아 울부짖고 있는 걸 이웃 아줌마가 데려다 놨다는 걸 봐도 문단속이고 뭐고 그냥 애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도구였던 거 같다. 그때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 중 제일 오래된 기억이고 부모에게 버림받을 것이란 최초의 두려움이다.

 

꼭 이런거에 발작 버튼 눌리는 애들 있다. 꼭 아비는 뭘 했냐 이런 코멘트 단다. 그러게. 그 당시 아비는 뭘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한텐 어미나 아비나 삶에 없어도 되는 별 의미 없는 존재다. 학대당한 애한테 그래도 엄마는 피해자다 그런 프레임 강요하는 무지한 인간들이 있는데 이건 확실히 하고 싶다. 문제의 본질은 학대당한 아이에겐 성별에 상관없이 부모 둘 다 가해자라는 거다. 아이의 환경을 나아지게 하려고 어른으로써 삶의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일차적 가해 맞다. 그냥 불행한 결혼 생활이지만 견디고 이어 나갔다는 건 아이에게 이상적인 것도 아니고 같은 방식의 삶을 영위한 거지 삶의 변화가 아니다. 내 결혼 생활이지만 그 고통을 같이 감내하자며 죄 없는 애 머리끄덩이 붙잡고 같이 버틴 거니 이건 전형적인 학대다.

 

철없는 엄마들이 ‘널 아빠 없는 아이로 만들기 싫어서, 아비가 놈팽이었지만 견딜 수밖에 없었다.’ 라며 학대당한 애들한테 자기가 피해자 코스프레하면서 변명해댄다. 애들은 이걸 진짜 그대로 받아들인다. 성인이 되어서도 말이다. 그러면서 엄마가 불쌍하다며 엄마 두둔하려고 한다. 이런 엄마들은 스스로 과거를 돌아보라 해도 못 돌아본다. 본인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는 걸 받아들이면 정말 자괴감 들고 비참해지거든. 본인은 그냥 머리로 냉철한 생각 하기 싫고 그래서 몸이 고달프고 마음이 아파도 개 같은 상황에서 버티길 자초한 거지. 그래서 아이에게 ‘가정의 울타리’는 지켜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아이가 원해서 이혼을 안 했다 뭐 이딴 식으로 미성년이라 법적인 선택권 전혀 없는 자식한테 책임전가 한다.

 

특히 가정환경 안 좋은 와중에 자라난 어린 여성들, 이런 말의 본질을 꼭 꿰뚫어 봐야 한다. 안 그러면 평생을 부모 뒤치닥거리 하고 그렇게 살다가 말년 가서 후회한다. 애 어른 키우는 건 애 키우는 것보다 더 힘들다. 당신 부모들은 당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성인이었고 아이였던 당신의 케어가 필요하지 않다. 연애를 하는 것, 결혼하는 것, 이혼하는 것, 아이를 낳는 것 모두 다 성인이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는 삶의 선택이다. 당신을 안 낳았어도 부모들은 본인 인생은 본인들이 어떻게든 책임져야 했던 거다. 결국 본인이 지은 선택에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건 아이에게 있어선 통하지 않는 변명이다.

 

실제로 5학년때인가 가출을 두어 번 시도를 한 적이 있는데 밤 9시 때쯤 갈 곳이 없어 결국 살고 있던 빌라 옥상 계단에서 정말 이 집 밖을 벗어나면 어느 누가 나를 따스히 반겨줄까 하는 서러움에 울다가 결국 집에 들어간 적이 있다. 내 엄마는 내가 가출을 하려고 했는지도 몰랐다. 밤 9시에 애가 집에 돌아오는 게 정상은 아닌데도, 내가 집에 있다가 잠깐 밖에 나갔다 온건 줄 알았을 정도였으니. 90년대 중반 수도권 사교육 시장은 요즘 같지가 않아서 보통 학원들은 늦게까지 아이들을 잡아 두지 않았고 나 또한 그렇게 학원을 많이 다닌 편이 아니었다.

아무튼 이런 감정은 1번 상황처럼 자주 일어나는 플래시백은 아니다. 허나 이것의 강도는 며칠에서 일주일 갈 정도로 여운이 꽤나 세다. 주로 나 스스로 어느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아니면 인생에 있어 중대한 결심을 할 때 생겨난다. 이직을 할 때 보통사람들이 느끼는 좌절보다 절망감이 더 큰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서 부모의 환경을 벗어나는 건 죽음과 같다는 걸 감정적으로 학습했기 때문에 현 직장을 벗어나는 것도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과 같다고 감정적으로 혼돈한다. 그러면서 이직을 하지 않으면 서서히 말라죽을 것이고 이직을 하더라도 나를 반겨줄 곳이 없다는 좌절감에 부딪힌다. 이게 하루에 몇 번씩 일어나는 1번 플래시백과 같이 합해지면 사람 진짜 말라죽는다. 몸에서 반응이 확실히 일어난다.

 

이 플래시백은 그래도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나타나기 때문에 어느정도 예측은 할 수 있지만 내가 처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감정적 반응이다. 누구도 이직을 못해서 구직기간이 좀 길어진다고 해서 나는 곧 죽을 거다라는 결론은 짓지는 않는다. 허나 나 같은 경우는 과거의 그 플래시백에 의해 이런 말도 안 되는 결론을 짓고 불필요하게 과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는 것에서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