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SD 회복

완벽한 유령 - 회복중 인간관계의 변화

Rambling on & about 2020. 11. 26. 07:35

결국 하나씩 계속 끊어내기를 반복해서 완벽하게 유령 같은 존재가 되었다.

 

불가항력적으로 타인에 의해 끊어진 것은 아니고 내 필요에 의해 이렇게 된 것인데. 약간의 아쉬움은 꽤나 남는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콘셉트가 화두가 되는 때에 우연하게 맞아떨어지는 나의 상황이 뭔가 정당성을 얻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시초는 아무래도 성당을 떠난걸로 부터 시작했던 거 같다. 아무래도 봉사직이다 뭐다 근 8년간을 몸담고 나서 딱 하나 크게 배운건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거였다.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사방팔방 불러 젖히는데 세상에서 배려심 없는 걸로는 최고인 인간들만 모여있는 집단이 여기구나 라는 생각이 들 만큼 개고생으로 한판 크게 데고 나서 사람에 대한 혐오까지 생겨버린 계기가 되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수십년간 말도 안 되는 요구만 하며 사람을 말려 죽이던 내 엄마 때문이기도 했고 그때도 한 1년 덜 되는 기간 동안 집을 사야 한다면서 나를 들들 볶는 엄마의 소리에 시달린 나머지 성당 봉사직에 매달려서 한 숨 돌리나 싶었는데 뭐 성당은 그냥 마일드한 엄마들이 집중 포진 해 있는 곳이었을 뿐이었지. 

 

암튼 성당에서 시작된 인간에 본성에 대해 싹트기 시작한 의심(?) 이 결국엔 활활 타올라 직장에까지 미치기 시작했고 결국 이직을 함으로써 질척거리는 직장에서의 인맥까지 확실히 청소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내가 직장에서 꽤 친하던 돌싱 애엄마도 꽤나 내 엄마 버금가는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에 병적인 피해망상 같은걸 가지고 있었는데 암튼 이 여자 끊어내면서도 진짜 흙탕물 개싸움 한판 했었다. 

 

그러면서 2016년 크리스마스 때쯤 부모가 1년을 들들 볶아 내 앞날 30년을 조져놓는 대가로 구입한 집을 구입 2주 만에 이혼해야겠으니 다시 팔자 이런 개지랄병을 떠는 바람에 인생 끝판 나는 현타가 아주 세게 왔고 그게 내 인생 일대의 제일 최고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내 인생에 있어 인간관계를 그냥 한 단어로 종합하면 ‘호구 잡히기’다. 주거니 받거니 동등한 위치에서의 소통은 그 당시의 내 기질이나 내가 자라온 환경을 생각하면 꿈에도 꿀 수 없는 그런 것이었고 모든 인간관계에서 나는 지독스러운 을이었다. 상대방이 개병신 들이라서 호구 잡아 빨대 꼽고 빨아먹는 케이스들이 지독스럽게 많았던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을을 자처하고 한판 먹고 들어가니까 이걸 동물의 감각으로 캐치하는 새끼들은 꽤나 오래 관계를 유지하면서 빨아먹을 대로 다 빨아먹었다. 

 

뭐 수년간 인간관계 다 재점검하고 엄청나게 머리 굴리고 이러니 지금에서야 위에 열거한 한 문단 이내로 내 인간관계에 원천적인 문제가 뭐인지 열거할 수 있지만 내 주위를 청산해야겠단 결심을 한 2016년 말에는 정말이지 저기의 1도 알라고 해도 알 수가 없었다. 

 

뭐 부모 깠지, 성당 인맥 다 깠지, 직장 인맥 다 까고 나니 옛 성당 인맥 한 서너명하고 고등학생 때 친구 하나 남자 친구 이렇게 남았다. 옛 성당 인맥 3명들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 아님 애정결핍이 병적인 나머지 정서적 퇴행을 보이는 케이스, 보더라인으로 보이는 케이스 이렇게 있었는데 이렇게 열거만 해봐도 다 똥들 아닌가. 얘네들은 그냥 줄줄 새서 바닥 보이는 지들 자존감 채워 줄 서플라이(supply)를 찾아다닐 뿐이라 친구고 나발이고 그 의미를 모르는 인간군상들이었고. 이것들 끊어낼 때 내가 진짜 어떻게 인생을 이따구로 살아서 씹다 뱉은 껌처럼 질척이고 떼내기 힘든 똥들만 이렇게 모으고 다녔나 싶어서 하늘이 꺼지는 기분이었다. 

 

삼십 평생 부모등쌀에 치이기만 해 봤지 피붙이한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껴본 적이 있나 친구라고는 지고 들어가서 을의 우정으로 그렇게 구걸하면서 친분 쌓는 방법밖에 배운 적이 없으니 별 병신 같은 것만 다 들러붙어. 내 인생 최대 화두는 는 유치원생 때부터 친구 사귀기였는데 별 지랄을 다 해봐도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는 이런 사이클이 너무나 절망적이어서 한숨만 나왔다. 

 

그러고 나서 한 1-2년 있다가 소셜 계정들을 다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지독하게 고독하고 내 한평생을 친구들 사귀는걸 그렇게 열망해왔으니 온라인 상에서라도 그 희망을 붙잡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은따 경험에, 집안 사정이니 생각하면 사람들 불러 모아 친하게 지내는 거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중고등학생 때부터 온라인 게시판 같은걸 이용했었고 한 20년 정도 짬이 생기니 소셜 계정에서 유쾌한 사람으로 등극하는 건 꽤나 쉬운 일이었다. 30대 이상 일반인들이 소셜 계정 시작하면 거진다 핵노잼에 핑프질에 눈살 찌푸리게 하는 뉴비짓 얼마나 많이 해대겠나. 나름대로 소셜 계정을 버릴 수 없던 것도 내가 자주 놀던 곳이라 판깔기도 수월했고 물리적으로 진짜 얽힐 필요도 없이 가짜 친분 유지라도 해서 이 뼈저린 고독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에서였다. 

 

하지만 소셜에 뼈를 묻는 인간들 치고 자존감 건강한 사람들이 없고 사고의 방향도 원 이상한 곳으로 치우쳐져서 예 민폐 다 끼치고 다니는 걸로 치면 그냥 거리의 사람들이 원만한 성격으로 보일 정도다. 뭐 그러다 보니 소셜 계정에서 별 병신들을 볼 가능성이 현실 세계보다 현저히 높다는 걸 알게 되었고 차단에 차단을 반복하다 병신의 홍수 속에 내가 숨 막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 지웠다.  그래 봤자 페이스북 인스타 그램 이렇게 지운 거 밖엔 없지만 썩은 동아줄 그거 한 자락 남은 거 그것마저 아궁이불에 던져 넣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 착잡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때가 2019년 12월 정도였던 거 같다. 

 

실질적으론 유령인데 내 정신과 내 몸을 되찾은 느낌은 무엇 때문인지. 지금처럼 삶에 있어 확신이 찬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