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SD 회복

Complex PTSD - CPTSD

Rambling on & about 2020. 11. 26. 07:25

나르시시스트적 학대를 당한 여성들은 흔히들 경계성 성격장애를 앓는 경우가 많다고는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이 스테레오 타입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어찌 보면 C-PTSD라는 병명에 제일 부합하는 인물이다. 이것에 대해 내 성향이나 내가 평생 겪었던 증상을 나열해본다.

 

일단 나는 병적으로 남에게 의존하기를 기피하는 사람이다. 남에 의존을 너무 하는 나머지 상대방에게서 절연을 당한다기 보단 내가 먼저 외부인에게 질려 그들을 떠나는 경우가 흔했다. 남에게 감정적으로 의존을 하는 거 자체가 나에겐 허락이 되지 않은 거라 믿고 살던 시절이 있었던걸 보면 말이다.

 

이는 어려서 부터 엄마의 책임 전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한데, 엄마 같은 나르시시스트들은 미성년 어린 자식에게도 자신의 감정에 대해 어떤 해답을 제시해주길 요구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남편과의 마찰이 있어 화가 난 상황에서도 (결혼 관계는 누구의 탓을 결론짓기 전에 두 어른만의 문제이고 그 둘만 이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실수로 물컵을 엎지른 아이 때문에 자신이 화가 났다면서 윽박을 지르거나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감정 문제를 상관도 없는 아이가 촉발시켰다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미성숙한 어른의 감정을 받아주는 걸 어려서부터 터득했다. 이건 내가 가진 강한 책임감과 연관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살아 오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내 연애 상담을 진지하게 한다거나 진로 상담을 한 적이 없다. 가족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논외의 문제였고 아예 입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이 점으로 보면 지인들에게 질척인다는 느낌을 줄 정도의 감정적 의존과 집착을 보이는 경계성 인격장애의 증상과는 전적으로 다른 걸 알 수가 있다. 나 같은 경우는 남에 대한 의존 자체가 안 되었다고 봐야 한다. 정 반대 스펙트럼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감정적 폭발로 인한 자해, 자살 시도 그리고 위험한 행위를 한 적도 없다. 당연히 20대 초중반 우울증이 7년간 지속되면서 자살시도로 이어 진적은 있지만 이는 수일간, 수주 간의 우울감이 지속되면서 무너지는 자아에서 탈출을 하려는 시도였고 어느 정도 시물레이션을 계속 반복해서 계획을 했던 거라고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어떤 찰나의 감정적 폭발로 인해 내 몸에 상해를 입히려는 시도는 해본 적이 없다. 그러기엔 나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무척이나 많은 사람이고 자살시도나 자해를 통해 내 고통을 남에게 전시를 하는것 또한 상상을 해본적이 없으므로 이런 양상에선 배제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평생 낮은 자존감에 시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내 인생 자체가 평생 우울했던 건 아니다. 10살까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일반적인 아이처럼 나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과 감정 표출이 가능했었다고 생각한다. 칭찬을 받으면 뿌듯함도 느끼고 아이큐 검사 결과를 받고 나서 남들에게 자랑도 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나 12살 호주로 이민을 오고 나서 언어장벽을 겪고, 같은 한국인에게서 왕따를 당하고, 부모의 비자 문제로 불법 체류 상황이 되었으며 첫 3년 정도 우리 가족이 이모네 집에 얹혀살면서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다 겹치게 되면서 원체부터 불분명했던 나에 대한 가치가 바닥까지 떨어졌다. 사람의 성격은 사춘기 때 보통 완벽하게 형성된다고 하는데 나는 성격 형성에 끝맺음 시기에 벌어졌던 상황이 아주 최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낮은 자존감은 정말이지 한 번도 뒤바뀐 적이 없다. 나에 대한 자존감이 바닥이라는 건 '나는 못할 거야. 네까짓 게 그런 걸 꿈꾸면 안 되지.' 같은 부정적인 되뇜에서도 보이지만 남에게 '죄송하다'라는 말을 달고 사는 것에도 보인다. 이는 전형적으로 나르시시스트 학대를 당한 사람들에서 보이는 특징 중 하나인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나르시시스트 엄마가 자식에게 자신의 기분이 더러운 이유는 다른 곳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식의 행동을 나무라며 윽박을 지르면 내 잘못이 아닌데도 내 잘못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고 이게 10년 20년 반복되다 보면 거의 자동적으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수시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것뿐인가. 낮은 자존감은 성취감을 저하시킨다. 삽 하나로 에베레스트산을 옮겼다 치자. 이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이뤄냈다면 내가 한 일이 얼마나 큰 성취인지, 남들이 하기 힘든 일인지 인지를 못하게 되고 넘어가는 것은 물론, 이루고 나서도 '남이 내가 한 일에 꼬투리를 안 잡아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네' 하고 앞으로 다가 올 더 큰 고생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면서 하루하루 죽음같이 두려운 남들의 평가를 피해 가는 삶이란 무간지옥이나 다름없다. 인생에 있어서 내가 하는 어떤 것도 나에게 행복을 주지 않고 이게 완벽주의와 더해지면 칭찬받아 마땅한 상황에도 남들이 내 일에 대한 비난을 퍼부을까 이내 두려워하게 된다.

 

이는 때에 따라 자신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었다가 부정적이기도 한 경계성 성격장애의 특징과는 맞아떨어지지가 않는다. 항상 낮은 자존감 또한 c-ptsd의 확실한 특징이다.

 

그냥 증상적으로 보면 난 범불안장애에 범주에 들어가지만 (살면서 공황장애, 거식증, 우울증을 다 거친 후 30대에 들어서는 그냥 불안 증세만 보이게 됨) 증상을 떠나 원인적인 문제까지 다 전반적으로 보게 되면 나는 c-ptsd에 들어간다. 이는 내 엄마가 정서적인 학대를 할 수밖에 없는 악성 나르시시스트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