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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와서 보수 주의자 하신다고요?

이전에 페이스북을 할 시절 실존 지인 중에 남편 자랑은 진짜 하고 싶어서 안달 났는데 그 와중에 빻은 사상에 자부심까지 지닌 동갑내기 어떤 여자애가 하나 있었다. 그 거대한 자기애가 걸리적거려 결국 SNS상에서 다 지웠다. 우파건 좌파건 간에 사상이 자신의 대표하는 부심 거리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사상이 정말 학구적인, 사회의 문제를 중시하는 열정에서 나왔는지도 알 수 없을뿐더러 기득권, 마치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엘리트층에 소속되어있다는 단서인 거 마냥 그렇게 편 가르기 하고 다니는 그런 천지 분간 못하는 멍청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암튼 이 여자애 같은 경우엔 한국인이 이민 1.5세대로 전문직 직함 달고 결혼해서 안정된 삶 사니까 자기가 호주 주류 보수사회에 편입되었다고 크게 착..

타지살이 2020.11.26

완벽한 유령 - 회복중 인간관계의 변화

결국 하나씩 계속 끊어내기를 반복해서 완벽하게 유령 같은 존재가 되었다. 불가항력적으로 타인에 의해 끊어진 것은 아니고 내 필요에 의해 이렇게 된 것인데. 약간의 아쉬움은 꽤나 남는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콘셉트가 화두가 되는 때에 우연하게 맞아떨어지는 나의 상황이 뭔가 정당성을 얻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시초는 아무래도 성당을 떠난걸로 부터 시작했던 거 같다. 아무래도 봉사직이다 뭐다 근 8년간을 몸담고 나서 딱 하나 크게 배운건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거였다.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사방팔방 불러 젖히는데 세상에서 배려심 없는 걸로는 최고인 인간들만 모여있는 집단이 여기구나 라는 생각이 들 만큼 개고생으로 한판 크게 데고 나서 사람에 대한 혐오까지 생겨버린 계기가 되었다. ..

CPTSD 회복 2020.11.26

Complex PTSD - CPTSD

나르시시스트적 학대를 당한 여성들은 흔히들 경계성 성격장애를 앓는 경우가 많다고는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이 스테레오 타입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어찌 보면 C-PTSD라는 병명에 제일 부합하는 인물이다. 이것에 대해 내 성향이나 내가 평생 겪었던 증상을 나열해본다. 일단 나는 병적으로 남에게 의존하기를 기피하는 사람이다. 남에 의존을 너무 하는 나머지 상대방에게서 절연을 당한다기 보단 내가 먼저 외부인에게 질려 그들을 떠나는 경우가 흔했다. 남에게 감정적으로 의존을 하는 거 자체가 나에겐 허락이 되지 않은 거라 믿고 살던 시절이 있었던걸 보면 말이다. 이는 어려서 부터 엄마의 책임 전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한데, 엄마 같은 나르시시스트들은 미성년 어린 자식에게도 자신의 감정에 대해 어떤 해답을..

CPTSD 회복 2020.11.26

Emotional Flashback

감정적 플래쉬백이란 인지능력이 발달되기 전의 유아시기에 트라우마에 처했을 때 (반복적, 지속적으로 학대에 노출되어 그 강도가 쌓아 올려진 발달적 트라우마) 그 당시의 상황이 전혀 이미지 되지 않아 기억 속에 떠오르지는 않지만 그 당시 느꼈던 감정만이 뇌리에 남아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지속적인 학대 (폭력, 정서적인 강압, 방치)에 노출되면 이는 발달시기에 아이의 뇌 구조를 바꿔놓는다. 유아에겐 어른의 이런 부적절한 육아가 지속될 경우 자신의 삶이 위험에 노출될 것이고 이는 죽음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게 된다. 이때 자기 파멸에 대한 두려움 같은 감정만이 기억 속에 남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일단 전문가가 아니고 나 좋자고 철저히 이런 걸 겪는 환자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거기 때문에 나의 ..

CPTSD 회복 2020.11.26

효와 인간의 오만

한국 토착화 유교에서 나오는 효에 대해선 정말이지 원색적인 비난을 참을 수가 없다. 본론적으로 이 콘셉트를 내가 극혐 하는 이유는 인간 중심적인 오만함 때문이다. 사람도 다른 동물에 비해 다를꺼 하나 없는 생물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 한들 여타 다른 생물들처럼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부모로서 아이를 가지는 것조차 자연의 도리를 거스를 수 없다. 특히나 헬조선 유교 사상에 물들어 있는 한국 부모들이 하는 가장 큰 착각은 본인들이 아이를 마치 조물주가 빚어 내듯 창조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건 정말이지 나에게 있어 최고의 극혐 포인트이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아이를 ‘창조’하거나 ‘빚어 낼’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 태교를 해서 아이의 외관을 바꿀 수 있을 거라 기대를 거는 이들의 무지는 이미 ..

CPTSD 회복 2020.11.25

온라인 커뮤니티 생활

가치관이 좀 정립이 되니까 온라인에서 시간을 때우는 게 얼마나 내 정서에 치명적인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햇수로 거의 18년을 쏟아 부은 다음 카페들을 비롯해서 모든 포털 커뮤 생활을 접은 지 한 2개월 정도 되어 간다. 친목용 SNS들은 작년에 다 삭제를 해서 온라인상에서 붙잡고 있는 건 이 일기장 블로그뿐이다. 내 온라인 생활을 완전 중단하기로 마음먹은 후 몇 가지 깨달은 점들을 나열해 본다. 1. 깊은 지식을 얻는데 부적합 온라인은 정보의 바다이다. 하나 단순 친목용 커뮤니티들은 공유되는 정보의 질이 너무 낮고, 사람의 이목을 끌게 끔 깊이 있는 토론이 가능하지 않고, 팩트 체크도 되지 않는 정보들이 많은 데다가, 기존의 허접한 정보를 재가공해서 확산시키는데만 적합하다. 커뮤니티 생활 하다 보면 ..

CPTSD 회복 2020.11.25

순탄한 인생에 대해 느껴지는 이질감

요새는 인생이 어떻게 이렇게 순탄하게 풀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잘 풀리고 있다. 부모가 내 인생에 흉살과도 같았던 존재였던지라 이들이 사라지고 나니 걱정거리가 없다. 직장도 첫 인터뷰에 바로 붙어서 이직하고, 렌트도 첫 집에 신청하자마자 붙고, 대학도 입시 원서 넣은데서 다 합격 통보가 오고 말이다. 평소에는 몇주, 몇 달을 절절매며 사방팔방 뛰어다녀도 될까 말까 한 것들이 한 두어 달간에 다 연속으로 잘 되어가는 걸 보니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싶다. 어릴 적 우울증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 매일같이 학교 도서관으로 끌고 가서 안 써지는 과제 쓰느라 피땀 흘려서 졸업했던 거, 마음의 빚지기 싫어서 재활중에 한국으로 추방당한 부모 청소 잡 다 팔아서 현금화시키고, 보내는 이력서 마다 다 퇴짜 맞고 면접 낙방..

CPTSD 회복 2020.11.25

이직을 통해 느낀 점

퇴직한 지 1달 넘어가는 시점에서 지난 4년간 쌓여왔던 게 매일같이 폭발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으므로 근무후에 짬이 날 때마다 전 직장 건물에 가서 빈 건물에다 대고 쌍욕을 하고 그렇게 분을 풀고 온다. 의식의 흐름대로 나오는 개소리지만 고 김대중 선생이 정 안되면 벽에다 대고 욕하라고 했었다. 뭐 욕한다고 그 망할 구석이 더 나아질 방법은 없겠지만 화병은 막아야 하니까 말이다. 어떻게 제정상으로 돌아가는게 하나도 없다.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게 국밥처럼 말아먹는지 대단할 따름이다. 일단 그곳에 있는 두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족 같음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한 그룹은 외향형 나르시시스트들이고 두 번째 그룹은 극도로 신경질적이면서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이다. 외향형 나르시시트들은 뭐 말..

Ranting 2020.11.25

나르시시스트들 특징

그래! 나 별거 안 해도 항상 갈채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고귀한 나님께서 숨만 쉬어도 박수를 쳐줘야지!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 특별한 사람들로 둘러싸여야 한다는 허영심 때문에 친구도 가리고 사교 집단 이런 거에 목을 맨다. 이런 데서 손도 까딱 안 할 거면서 감투 쓰는 것도 좋아함. 질투도 엄청 심하다. 친하면 친할수록 이 질투로 비롯된 분노가 심해진다. 그래서 혈육에 대한 질투가 더 심할 때도 있다. 이 질투심과 분노를 잠재우려고 질투하는 상대에게 비난을 퍼붓거나 남들에게 평가절하하는 말을 뿌리는 걸 반사적으로 한다 (절대 계획적 아니다. 계획이 있는 애들은 이렇게 멍청한 짓 안 한다). 제 잘난 맛에 상대방한테 충고질 잘한다. 꼰대질은 물론 그냥 남들의 의사 자체를 개의치 않기 때문에 선을 넘..

Ranting 2020.11.25

이방인의 설움 vs 인간으로써의 세상과와 괴리

내가 오랫동안 이민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민생활의 녹록지 않음, 인종차별, 새로운 환경에 적응과정에 그렇게 세세하게 적지 않는 본질적인 이유는 나는 이민자로서의 이방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이방인이란 느낌을 내가 말을 떼기 시작했을 때부터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순탄한 유년시절을 겪고 그에 인한 높은 자존감으로 원만한 교우 생활 (크게 왕따를 당한건 아니지만 절친한 친구들을 사귀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음)까지 했더라면 한 순간에 호주땅에 떨어져서 말을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인종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거 자체가 아주 크나큰 쇼크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내 블로그의 글은 나의 호주 적응기로 도배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것 자체에 엄청난 프라이드를 가졌을지도 모르고 "OO의..

타지살이 2020.11.25